관통당한 몸

저자

크리스티나 램

역자

강경이

브랜드

한겨레출판

분야

사회/정치

출간일

2022-03-02

ISBN

9791160407754

가격

22,000원


구입처

전자책

도서정보

ㆍ 《더 타임스》 《에스콰이어》 ‘올해의 책(2020)’ 선정

ㆍ 오웰상 정치 부문 최종 후보, 베일리길포드상 논픽션 부문 최종 후보(2020)

ㆍ 위톨드필레키 인터내셔널 북어워드 수상(2021)

ㆍ 펜/존케네스갤브레이스어우드 논픽션 부문 후보(2021)

ㆍ 뉴욕퍼블리라이브러리 헬렌번슈타인북어워드 저널리즘 부문 최종 후보(2021)

ㆍ 영국, 독일, 프랑스, 브라질, 이탈리아, 스웨덴 등 전 세계 12개국 번역 출간

 

르완다 정글에서 독일 베를린까지

제2차 세계대전 위안부부터 21세기 IS의 성노예까지

세계의 전쟁터에서 여성의 몸은 여전히 전장이다

 

전쟁이 일어나면 여성의 삶에는 특별한 비극이 더해진다. 목숨을 잃는 것 이상의 고통, 성폭력이다. 지금도 세계 곳곳의 전장에서는 여성의 몸에 끔찍한 폭력이 가해지고 있다. 이 책은 30여 년 동안 분쟁지역 전문기자로 활동한 저자가 전쟁 성폭력의 실태를 고발한 책이다.

그 어떤 전쟁 무기도 강간보다 끔찍하지 않다. 성폭력은 피해자의 신체를 훼손할 뿐 아니라 내면에서 존재의 의미를 빼앗는다. 가정을 파괴하고, 공동체를 해체한다. 어린 소녀를 버림받은 사람으로 만들어 인생을 막 시작하기도 전에 끝내기를 바라게 한다. 공동체에서는 ‘나쁜 피’로 거부당하고 어머니들에게는 그들이 겪은 고통을 매일 떠올리게 하는 아이들을 태어나게 만든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의 위안부부터 독일 여성에 대한 소련 군대의 성폭행, 버마의 로힝야 집단 학살, 1994년 르완다 집단 강간, 보스니아의 강간 수용소, 보코하람의 나이지리아 여학생 납치, 야디지족 여성에 대한 ISIS의 만행까지, 저자는 시대와 지역을 넘나들며 극단적인 고통의 증언을 전한다. 아직 말도 하지 못하는 영아 피해자부터 “염소처럼 팔려다닌” 소녀, 가족 앞에서 성폭력을 당한 여인, 젖가슴이 잘려나가고 성기가 훼손된 피해자까지, 저자가 만난 여성들이 털어놓는 이야기는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비극의 한계치를 넘어선다.

크리스티나 램Christina Lamb
영국 출신의 저명한 언론인이자 작가다. 1980년대 후반부터 분쟁지역 전문기자로 중동, 아프리카, 유럽, 동남아시아, 남아메리카 등 대륙과 국가를 가리지 않고 가장 위험하고 치열한 사건이 벌어지는 곳에서 활동하면서 전쟁의 메커니즘과 참상을 보도해왔다.
옥스퍼드대학교에서 철학, 정치, 경제학을 공부했으며 22세 때인 1987년 우연한 기회에 파키스탄에 가게 된 이후 본격적으로 분쟁지역 전문기자로 활동했다. 이듬해인 1988년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점령을 보고하여 ‘올해의 젊은 기자상’을 받았다. 지금까지 모두 다섯 차례 ‘올해의 기자’로 선정되었고, 유럽 최고의 전쟁 보도상인 바이외칼바도상을 비롯해 15개의 주요 언론상을 받았다. 2013년에는 언론 활동에 대한 공헌을 기려 영국 왕실로부터 대영제국훈장을 받기도 했다.
이라크에서 리비아, 앙골라에서 시리아 등 국가 간 전쟁이 벌어지는 곳뿐 아니라 에리트레아와 짐바브웨 등 내전이 일어나는 곳을 취재했다. 브라질 원주민에 대한 탄압을 취재하기 위해 아마존 오지에 가기도 했다. 파키스탄 정부로부터 추방을 당하기도 했고, 탈레반의 매복 공격을 받아 간신히 살아남은 적도 있다. 2007년에는 베나지르 부토 파키스탄 총리가 폭탄 테러로 사망했을 당시 같은 버스에 있기도 했다. 최근에는 나이지리아 보코하람에 의해 납치된 소녀들과 이라크의 야지디족 여성을 비롯해 버마와 르완다, 아르헨티나, 독일, 세르비아 등 전쟁 상황에 처한 여성들의 현실을 고발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말랄라 유사프자이와 함께 쓴 《나는 말랄라I Am Malala》를 비롯해 《아프리카 하우스The Africa House》 《카불이여 안녕Farewell Kabul》 《알레포의 소녀The Girl from Aleppo》 등을 썼다.
현재 런던에 거주하며 비영리단체인 전쟁ㆍ평화보고연구소(IWPR)와 아프간커넥션의 이사이자 옥스퍼드대학교 유니버시티칼리지 명예교수로 있다.

옮긴이 강경이
대학에서 영어교육을, 대학원에서 비교문학을 공부했다. 옮긴 책으로는 《나는 히틀러의 아이였습니다》, 《예술가로서의 비평가》, 《철학이 필요한 순간》, 《절제의 기술》, 《프랑스식 사랑의 역사》, 《걸 스쿼드》, 《길고 긴 나무의 삶》, 《과식의 심리학》, 《천천히, 스미는》, 《그들이 사는 마을》, 《오래된 빛》, 《아테네의 변명》 등이 있다.
프롤로그_ 여성의 몸, 전장이 되다

1 야디지 소녀를 만나다
2 죽음보다 끔찍한 범죄
3 보코하람에게 빼앗긴 소녀들
4 로힝야의 비극
5 수십 년 동안 감춰진 고통
6 역사를 바꾼 르완다의 여성들
7 보스니아의 무슬림 여성
8 이것이 제노사이드다
9 강간 군대와 사냥의 시간
10 삶을 도둑맞은 아이들
11 목숨을 건 구조 작전
12 정의의 여신은 어디에 있는가?
13 닥터 미러클과 ‘기쁨의 도시’
14 생후 18개월의 생존자
15 마지막 숨이 다할 때까지

후기_ 다시 쓰는 여성의 역사를 위해
감사의 글
주요 참고자료
옮긴이의 말
르완다 정글에서 독일 베를린까지
제2차 세계대전 위안부부터 21세기 IS의 성노예까지
세계의 전쟁터에서 여성의 몸은 여전히 전장이다

전쟁이 일어나면 여성의 삶에는 특별한 비극이 더해진다. 목숨을 잃는 것 이상의 고통, 성폭력이다. 지금도 세계 곳곳의 전장에서는 여성의 몸에 끔찍한 폭력이 가해지고 있다. 이 책은 30여 년 동안 분쟁지역 전문기자로 활동한 저자가 전쟁 성폭력의 실태를 고발한 책이다.
그 어떤 전쟁 무기도 강간보다 끔찍하지 않다. 성폭력은 피해자의 신체를 훼손할 뿐 아니라 내면에서 존재의 의미를 빼앗는다. 가정을 파괴하고, 공동체를 해체한다. 어린 소녀를 버림받은 사람으로 만들어 인생을 막 시작하기도 전에 끝내기를 바라게 한다. 공동체에서는 ‘나쁜 피’로 거부당하고 어머니들에게는 그들이 겪은 고통을 매일 떠올리게 하는 아이들을 태어나게 만든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의 위안부부터 독일 여성에 대한 소련 군대의 성폭행, 버마의 로힝야 집단 학살, 1994년 르완다 집단 강간, 보스니아의 강간 수용소, 보코하람의 나이지리아 여학생 납치, 야디지족 여성에 대한 ISIS의 만행까지, 저자는 시대와 지역을 넘나들며 극단적인 고통의 증언을 전한다. 아직 말도 하지 못하는 영아 피해자부터 “염소처럼 팔려다닌” 소녀, 가족 앞에서 성폭력을 당한 여인, 젖가슴이 잘려나가고 성기가 훼손된 피해자까지, 저자가 만난 여성들이 털어놓는 이야기는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비극의 한계치를 넘어선다.
이 책에서 저자는 세계의 여러 전장에서 벌어지는 전쟁 성폭력의 실체를 고발하고, 그것이 왜 그리고 어떻게 우발적인 범죄가 아니라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무기로 활용되는지를 밝혀낸다. 전시 성폭력은 그 규모와 빈도에도 불구하고 세계에서 가장 무시되는 전쟁 범죄다. 이 책은 이처럼 끔찍한 범죄에 대한 고발이지만, 동시에 생존과 극복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 책에서 독자는 상처 입은 여성 그리고 살아남아 일어서고 발언하며 정의를 위해 싸우는 여성들을 만날 수 있다.

전쟁이 여성과 여성의 몸에 가한 모든 잔학 행위를 고발하다
“제가 어떻게 살아남았는지 모르겠어요. 누구든 저를 붙잡을 때마다 강간했어요.” _ 빅투아 무캄반다(르완다 내전 성폭력 생존자)

“제 삶은 그냥 강간당하는 것이 전부였어요.” 열여덟 살 야디지족 나이마는 다른 소녀들과 함께 ISIS에게 억류되었다. ISIS 대원들은 제비뽑기로 소녀들의 이름을 뽑았다. 이후 나이마는 ISIS 대원의 성노예가 되어 12명의 남자에게 “염소처럼” 팔렸다. 2014년 ISIS는 이라크 제2의 도시 모술을 점령했다. 인구 180만 명의 모술에서 수백 명의 야디지 소녀가 ISIS 대원들에게 납치되어 노예로 팔렸다. 그녀들은 끝없이 이어지는 폭행 속에서 강간당하고 팔려갔다.
“저를 두 번 쏘았어요. 오른쪽 무릎과 성기에요.” 2016년 버마군은 로힝야족에 대한 ‘소탕 작전’을 개시했다. UN 보고서에 따르면 최소 1만 명이 죽고, 70만 명이 고향에서 쫓겨났다. 그리고 여성의 52퍼센트가 강간당했다. 임신 8개월째였던 서른다섯 살의 사노아라는 아들의 목이 베이는 것을 보았고, 군인들에게 강간을 당했다. 그들은 강간을 마친 후 시노아라에게 총을 쏘았다. 뱃속의 아이는 어느 강둑에서 낳았지만 곧 죽었다.
“여전히 감춰진 고통이지요.” 방글라데시의 한제라 카탐은 스물세 살 때 파키스탄 군인에게 딸이 밟혀 죽는 모습을 보았고, 정신을 잃을 때까지 강간당했다. 그녀는 마을에서 받아들여지지 못했고, 지금도 구걸을 하며 살아간다. 1971년 방글라데시 독립전쟁 당시 20만~40만 명의 방글라데시 여성이 파키스탄 군인에게 강간당했다. 그녀들은 지금까지도 “어둠 속에서” 산다.
“저는 거듭해서 강간당했어요. 누구든 저를 붙잡을 때마다 강간했어요.” 반군을 피해 도망치는 빅투아의 뒤에서 누군가 몽둥이를 내리쳤다. 등에 업은 아이가 몽둥이에 맞았고, 죽었다. 빅투아는 셀 수 없이 강간당했다. 여동생은 난도질당한 채 주검으로 발견되었다. 1994년 르완다의 후투족은 100일 동안 투치족 80만 명을 학살했고, 하루 250~500건의 강간을 저질렀다. 모두 25만~50만 건이었다. 피해자는 2세부터 75세까지 이른다. 가해자들은 여자들을 강간한 뒤 막대와 병 등을 성기에 꽂았고 신체를 훼손했으며, 살해했다.
“그들은 제 큰딸을 저와 제 남편 앞에서 강간했어요.” 서른아홉 살이던 바키라는 ‘인종청소’의 희생양이 되었다. 강간당하고 폭행당한 딸을 치료하기 위해 약국을 찾던 중 그녀 역시 경찰에 의해 강간당했다. 1992년 시작된 보스니아전쟁으로 유고슬라비아군에 의해 9만 명이 넘는 사람이 죽었다. 사망자의 3분의 2가 무슬림이었다. 그리고 2만~6만 명의 여성이 강간을 당했다. 대부분 보슈나크인(무슬림)인 피해자는 6세부터 70세까지였고, 강간은 “의도적인 패턴”에 따라 “그 자체로 전략적인 용도”로 쓰였다.
“그들은 강간 군대였다.” 제2차 세계대전 말, 소련 군대가 베를린을 점령했다. 1944년 스탈린의 군대가 독일 국경을 넘어서면서부터 강간이 시작되었다. 베를린에서는 최소한 200만 명이 강간당했다. 8세부터 80세까지 모든 여성이 강간당했다. 피해자들은 오랫동안 침묵했다. 역사책에는 이와 관련한 아무런 언급이 없었다. 아무도 사과하지 않았고, 아무도 기소되지 않았다.
“영원한 악몽이에요.” 필리핀의 나르시사 클라베리아는 열두 살 때인 1942년 일본군에게 붙잡혔다. 아버지가 보는 앞에서 어머니가 강간당했고, 곧이어 그녀와 언니도 강간을 당했다. 전쟁 뒤 그녀는 마을 사람의 비난을 견디지 못해 고향을 떠나야 했다. 제2차 세계대전 동안 아시아에서 20만 명 정도의 여성과 소녀가 일본군에 의해 강제로 성노예가 되었다. 한국을 비롯해 중국과 버마, 인도네시아, 필리핀을 비롯해 일본에 점령된 국가의 여성이 희생되었다.

강간은 왜 그리고 어떻게 무기가 되는가?
“강간은 사회가 가해자를 처벌하기보다 피해자를 낙인찍을 가능성이 더 많은 유일한 범죄다.” _ 프라밀라 패튼(분쟁하 성폭력에 대한 UN 사무총장 특별대표)

전쟁에서 강간의 사용은 “분쟁의 역사만큼이나 오랫동안 존재해왔다”라고 1998년 UN 여성기구의 보고서는 선언했다. 강간은 마체테 칼이나 곤봉, 칼라시니코프 자동소총이나 다름없는 전쟁 무기였다. 가해자들은 존엄을 파괴하고 공동체를 공포에 떨게 만들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경쟁 종족이나 이교도로 여기는 사람을 말살하기 위해 강간을 사용했다.
1996년 1차 콩고 내전이 일어났을 때 하루 1000명의 여성이 강간당했다. 한 시간에 70명, 콩고 동부 여성 세 명 중 한 명이 넘는 수치였다. 서로 다른 종족과 서로 다른 편에 속한 민병대에 의해 강간이 자행됐다. 아이들 앞에서 집단 강간을 하기 일쑤였고, 여성의 생식기에 불을 붙인 막대나 총검을 밀어넣은 일도 있었다. 피해자의 방광이나 직장이 찢어져 누공이 생길 때도 많았다.
가해자들에게 피해자의 나이는 문제가 아니었다. 네 살배기 바이올렛 역시 강간을 당했다. 엄마가 볍씨를 뿌리러 나간 사이 어떤 남자가 학교 뒤 변소로 데려가서 강간했다. 아이는 항문으로 강간을 당했고, 직장에 구멍이 나 배설물이 샜다. 태어난 지 고작 일곱 달밖에 되지 않은 찬탈도 강간 피해자다. 엄마가 밭에 나간 사이 반군이 들어와 강간했다. 아기는 항문과 질이 닿아 있었다. 음경이 구멍을 뚫은 것이다. 18개월 된 알리앙스 역시 방광과 생식기, 직장이 모두 심각하게 훼손되었다.
공포감과 굴욕감, 수치심에 치를 떨며 사람들은 마을을 떠났다. 주민들이 떠난 곳, 강간 사건이 발생한 모든 곳에는 금과 콜탄, 코발트 같은 희귀자원이 있었다. 지하자원이 나라를 부유하게 만들기는커녕 여성들에게 저주가 된 것이다.
성폭력을 ‘전쟁의 흔한 부산물’로 여기기에는 그 수치가 비정상적으로 높다. 콩고에서 자행된 강간은 단순히 폭력적인 성행위가 아니라 전쟁 무기였다. 적은 비용으로 기존의 무기보다 훨씬 끔찍한 결과를 냈다. 공동체를 해체시켜 사람들을 사는 곳에서 떠나게 했다.
콩고뿐 아니라 이라크의 야지디족과 보코하람에 납치된 나이지리아 소녀들, 보스니아의 무슬림 여성, 로힝야족 여성에게서 볼 수 있듯이 강간은 분쟁 지역에서 체계적인 전쟁 무기로 사용되었다. 여성을 강제로 임신시킴으로써 장기적으로 ‘인종청소’를 진행하고, 민족(종족) 정체성을 약화시키는 전략으로 사용되었다.

‘느린 살인’ 전쟁 성폭력은 왜 드러나지 않는가?
“저야 어떻게 되든 상관없었어요. 저 혼자였다면 자살했을 거예요.” _ 투르코(ISIS 성폭력 생존자)

전쟁 성폭력은 자주 전쟁에 따르는 부산물로 인식되곤 한다. 남자들은 강간이 그저 동의를 얻지 않은 성관계일 뿐이라고, 거의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 여긴다. 하지만, 강간은 피해자의 신체를 훼손할 뿐 아니라 내면을 무너뜨리는 범죄다. 그 피해자들은 강간이 죽음보다 끔찍한 범죄라고 이야기한다.
강간은 일반적으로 신고가 부족한 편이다. 특히 분쟁지역에서는 신고가 훨씬 더 적다. 보복당하기 쉽고, 낙인찍히며, 증거를 모으기 힘들기 때문이다. 살인과 달리 사체가 없고, 수량화하기도 힘들다. 심지어 공포정치가 횡행하는 나라에서, 돈도 없고 교육도 받지 못한 여성들은 더욱 신고하기가 힘들다. 상담이나 배상은커녕 피해자 자신이 비난을 받는다. 손상된 신체와 평생 이어지는 트라우마 속에서 친밀한 관계를 맺지도 못한다. 공동체로부터 따돌림을 당하거나 심지어 가족으로부터 쫓겨나기도 한다.
수십 년 동안 강간은 세계에서 가장 소홀히 다뤄지는 전쟁범죄였다. 하지만 묵인되었고, 누구도 처벌받지 않았다. 군과 정치 지도자는 강간이 전쟁에 으레 따르는 부수적인 문제인 양 넘기거나 부인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뉘른베르크와 도쿄에 최초의 국제재판소가 세워졌지만, 성폭력 기소는 단 한 건도 없었다
1998년에 강간이 전쟁범죄로 처음 처벌되었고, 그해에 국제형사재판소 설립을 결의한 ‘로마규정’은 강간을 전쟁범죄로 규정했다. 하지만 국제형사재판소는 설립 후 21년 동안 전시 강간에 유죄판결을 한 건도 내리지 않았다. 유일하게 유죄판결이 내려진 적이 있었지만 그마저 항소로 뒤집혔다.

여성은 역사의 방관자가 아니다
“저는 두렵지 않아요. 살아남아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말할 겁니다.” _ 바키라 하세치치(보스니아전쟁 성폭력 생존자)

이 책에 실린 이야기들은 야지디족 생존자 로지안의 말처럼 “말하기도 힘든 일이지만 사람들이 모르고 있기도 더 힘든 일”이다. 이렇게 지구 곳곳에 형언하기 힘든 전쟁 성폭력이 만연한 이유는 국제 사회와 각국의 법정이 가해자를 제대로 법의 심판대에 세우지 못했기 때문이다. 저자는 침묵이야말로 이런 일들에 공모하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콩코민주공화국의 무퀘게 박사는 1999년 판지병원을 세운 뒤 20년 동안 5만 5000명이 넘는 강간 피해자를 치료했다. 지금도 매일 5~7명의 강간 피해자가 병원을 찾는다. 판지병원 근처에는 ‘기쁨의 도시’라는 시설이 있다. 열세 살에서 열여덟 살에 이르는 강간 생존자들의 자립을 위해 크리스틴 슐러 데쉬리버가 세운 곳이다. 이곳은 다양한 치유와 상담,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강간 생존자들의 자립을 돕는다.
보스니아전쟁 성폭력 생존자인 바키라 하세치치는 여성전쟁피해자연합을 세워 다른 피해자들과 함께 100명이 넘는 전범을 찾아내 법정에 세웠다. 보스니아 스레브레니차의 브란카 안티츠스타우베르는 ‘여성의 힘’이라는 의미의 스나가제네라는 단체를 운영하며 생존자들에게 치유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처음 여섯 명이던 가족은 300명 넘게 늘어났다. 그들은 장미를 재배하며 스스로 치유하고 경제적으로 자립하고 있다.
르완다의 후투족 여성인 고들리브 무카사라시는 여성들을 위해 세보타라는 단체를 설립했다. 증오를 품은 사람으로 살고 싶지 않았다는 그녀는 생존자들의 마음을 치유하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 그녀는 대부분 학살로 남편을 잃거나 가족과 함께할 수 없는 여성들의 자립을 위해 닭과 염소를 키우도록 제공한다. 그녀는 법정에서 증언하도록 생존자들을 설득했고, 그 결과 가해자들은 르완다 국제형사재판소의 법정에 서게 됐다.
1992년 필리핀의 로사 헨슨이라는 여성이 방송에 나와 아홉 달 동안 일본군의 성노예로 살아야 했던 과거를 증언했다. 그녀는 방송에서 더 많은 여성이 증언하기를 요청했다. 이후 200명 정도의 필리핀 여성이 증언했고, 1994년 ‘릴라필리피나’라는 조직이 세워졌다. 릴라필리피나는 일본이 전쟁 위안소 운영을 인정하고 그것을 역사교과서에 실을 것을 요구했다. 그리고 배상과 공식적인 사과도 요구했다. 물론 일본도, 두테르테의 필리핀 정부도 그들의 요구를 무시하고 있다.
변화를 위한 첫걸음은 침묵을 깨는 것이다. 이 책에서 증언한 여성들은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희망으로 자신의 가장 고통스러운 경험을 꺼낸 용기있는 운동가들이다. 이 책에 실린 이야기는 말하기도 듣기도 쉽지 않은 이야기다. 그러나 놀라운 용기와 영웅적 행동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저자의 말처럼, 여성은 그저 역사의 방관자가 아니다. 이제 이야기의 절반만 말하기를 멈춰야 할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