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경우

저자

조영아

브랜드

한겨레출판

분야

한국소설

출간일

2017-09-26

ISBN

9791160400977 03810

가격

12,000원


구입처

전자책

도서정보

“당연히 일어나야 할 일이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을 때, 삶은 모서리를 드러낸다.”

한겨레문학상 수상 작가 조영아의 두 번째 소설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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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파 세 모녀 자살 사건’, ‘근육무력증 장애인 동사 사건’, ‘4ㆍ16 세월호 참사’, ‘대구 지하철 화재 참사’,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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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이 된 죽음, ‘그녀’ 혹은 ‘그’를 위한 진혼곡

 

제11회 한겨레문학상 수상 작가인 조영아의 두 번째 소설집 《그녀의 경우》가 출간되었다. 《여우야 여우야 뭐 하니》, 《푸른 이구아나를 찾습니다》, 《명왕성이 자일리톨에게》, 《헌팅》까지 우리 사회의 어두운 이면과 소외당하는 인물에 대한 핍진한 시선으로 주목받았던 작가는 신작 《그녀의 경우》에서 ‘죽음’을 테마로 한 일곱 편의 소설을 내보인다. 작가가 보여주는 죽음의 이야기들은 우리에게 왠지 낯익은 기시감을 느끼게 한다. 그 이유는 소설의 모티프로 쓰인 여러 사건을 우리가 텔레비전이나 매체를 통해서 목격했고, 살면서 곁에서 혹은 멀리서 지켜봐왔기 때문이다.

〈그녀의 경우〉에는 부실공사로 붕괴되어 500여 명이 사망한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가, 〈궁극의 리스트〉에는 엄마와 두 딸이 생활고로 고생하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던 ‘송파 세 모녀 자살 사건’이, 〈겨울을 지키는 왕〉에는 혼자 사는 장애인이 겨울에 집 수도관이 터져서 얼어 죽어야만 했던 ‘근육무력증 장애인 동사 사건’이, 〈북쪽 방의 침묵〉에는 승객 300여 명이 구조를 기다리며 사망해야 했던 ‘4ㆍ16 세월호 참사’가, 〈만년필〉에는 화재에 대한 부실한 대응으로 200여 명이 죽어야 했던 ‘대구 지하철 화재 참사’가, 〈사라진 혀〉에는 고공 굴뚝 농성의 모습이, 〈폭설〉에는 ‘돌고래의 자살’이란 사회적 이슈가 언뜻언뜻 비춘다. 하지만 작가가 그 모든 사건을 소재로 소비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만년필〉의 주인공인 소설가 윤기의 경우처럼 아무리 진실된 글쓰기라고 해도 그것이 죄의식을 해소하는 길일 순 없다. 대신 작가는 납득할 수 없어 외면했거나, 납득했음에도 여전히 고통스러웠던 사건들을 이야기를 통해 애도한다. 어쩌면 부조리하다고 말할 수 있는 죽음들을, 개인적인 죽음을 넘어서 사회적 죽음으로 확장한다. 작가의 세밀한 관찰과 묘사를 통해 그저 사건이기만 했던 죽음들은 사실의 지점에서 진실의 지점으로 이동한다.

 

모서리를 드러낸 생(生), 맨 얼굴을 드러낸 죽음

 

‘죽음’이란 단어는 막연하게 들리지만 무척 친숙하면서도 한없이 겁이 나는 말이다. 어떤 죽음은 ‘죽음’이기 이전에 ‘죽임’으로 보이기도 한다. 표제작인〈그녀의 경우〉는 ‘삼풍백화점 붕괴’의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50대인 ‘그녀’와 아이를 임신한 30대인 ‘나’가 아파트 단지 내의 요리 교실에서 만나는 이야기다. 어느 날 ‘그녀’와 ‘나’는 식탁 위의 물컵이 3초 정도 흔들리는 걸 느끼게 되고 그날부터 ‘나’에 대한 ‘그녀’의 집착이 계속된다. 요리 교실에선 ‘그녀’가 근방의 아파트 청소 일을 하고 있고, 번 돈은 개들을 위해 쓰며, 요리 강습에 나오는 것도 음식을 맛도 안 보고 싸 가는 것도 개 때문이라는 소문이 난다. 그리고 ‘그녀’의 개가 노인을 물었다는 얘기까지 들린다. 수개월 뒤 ‘그녀’가 빌려주었던 책에서 한 장의 아이 사진을 발견한 ‘나’는 일상에서 지워진 지 오래인 ‘그녀’를 만나기 위해 그녀의 집으로 간다. ‘나’는 결국 ‘그녀’를 만나지 못한다. 그리고 ‘나’는 아이를 낳고, 이사를 하고, ‘그녀’처럼 개를 키우고, ‘그녀’가 그랬듯이 복합 쇼핑몰로 아이를 데리고 가기도 하면서 살아간다. 그리고 어느 날 알게 된다. ‘그녀’의 경우와 ‘나’의 경우가 어떻게 다른지.

 

그녀의 경우는 운이 나빴다. 아이를 가진 모든 부모가 그녀처럼 되는 것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아이를 가진 대다수의 부모가 나의 경우처럼 된다는 보장도 없었다. 그녀의 경우와 나의 경우 사이에는 햇살이 예쁜 은하수 아파트 1003호에서 나누어 먹던 팥죽에 대한 서로 다른 기억이 부유하고 있을 뿐 대한민국이라는 같은 하늘이 걸려 있었다. 우리는 둘째를 갖지 않기로 했다. 그때처럼 태교에 힘쓸 여력도 없거니와 그녀처럼 불운과 맞닥뜨릴 확률을 더 이상 만들고 싶지 않았다. 은하수 아파트 1003호 거실 장식장에 놓여 있던 이국적인 문양의 접시들이 우연히 거기 그렇게 자리하고 있는 게 아니라는 걸 그때는 알지 못했다. 그것은 대단히 운이 좋은 결과였다. _‘그녀의 경우’에서

 

우리는 그 모든 것을 죽음으로 몬 것이 무엇이었는지에 대해 생각할 수밖에 없다. 죽음을 피해 오늘을 살아가게 하는 게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우리에게 필요한 건 수많은 ‘경우’가 아니라 물컵이 떨리는 것에 놀라 얼굴이 하얗게 질렸으면서도 기어코 문을 열어 통로를 만들어냈던 ‘그녀’의 행위다. 그래야 삶이든 죽음이든 이어질 테니까.

 

금방 잊지 않는 것, 고작 글을 쓰는 것

 

단순히 희생자 수로 집계되는 죽음 앞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고작 글을 쓰는 것뿐이었다. _‘작가의 말’에서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죽음은 결국 남겨진 자들의 몫이라는 것이다. 남은 자들에게는 내밀하게 고민하고 고통당하며 축적했던 시간이 남아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죽음 이후를 생각해야 한다. 작가가 금방 잊지 않으면서, 고작 글을 쓰는 것으로 그것을 해냈듯 우리도 각자의 몫으로 주변의 숱한 죽음들을 위한 진혼곡을 불러야 한다. 더디지만 ‘죽음’이란 북쪽 방에도 봄이 올 것이란 믿음으로.

조영아
강원도 정선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자랐다. 서울여대 국문과를 졸업했으며 단국대 대학원 문예창작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2005년 〈매일신문〉 신춘문예에 단편 〈마네킹 24호〉로 등단했고, 2006년 《여우야 여우야 뭐 하니》로 제11회 한겨레문학상을 수상했다. 장편소설 《푸른 이구아나를 찾습니다》, 《헌팅》, 소설집 《명왕성이 자일리톨에게》를 썼다.
사라진 혀
궁극의 리스트
그녀의 경우
만년필
겨울을 지키는 왕
폭설
북쪽 방의 침묵
작가의 말
태교가 별거야? 좋은 음악 듣고 잘 먹고 잘 자면 돼. 진형은 다운받은 태교 음악을 틀어주고 요구하지도 않은 음식들을 사 날랐다. 우리는 예쁜 아기 사진을 냉장고며 집 안 여기저기에 붙여놓고 수시로 기도했다. V라인 얼굴에 큰 눈을 가진, 코가 오뚝한 아이가 태어나게 해달라고. 지금 생각해보면 그건 우리와 닮지 않은 아이가 태어나게 해달라는 주문과도 같았다. (‘그녀의 경우’, 82쪽)

그녀의 경우는 운이 나빴다. 아이를 가진 모든 부모가 그녀처럼 되는 것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아이를 가진 대다수의 부모가 나의 경우처럼 된다는 보장도 없었다. 그녀의 경우와 나의 경우 사이에는 햇살이 예쁜 은하수 아파트 1003호에서 나누어 먹던 팥죽에 대한 서로 다른 기억이 부유하고 있을 뿐 대한민국이라는 같은 하늘이 걸려 있었다. 우리는 둘째를 갖지 않기로 했다. 그때처럼 태교에 힘쓸 여력도 없거니와 그녀처럼 불운과 맞닥뜨릴 확률을 더 이상 만들고 싶지 않았다. (‘그녀의 경우’, 101쪽)

주말이면 너도나도 다 간다는 광화문이 그에게는 파리의 광장처럼 느껴졌다. 죽었다가 깨어나도 가지 못하는 곳. 그래도 죽어서라도 한번 가보고 싶긴 했다. 파리 말고 광화문 말이다. 거기 진짜 거대한 노란 리본이 있는지. 몸으로 시를 쓰는 사람들이 있는지. 텔레비전을 보면서 잠깐 의심해본 적이 있었다. (‘겨울을 지키는 왕’, 140쪽)

사는 게 힘든 건 저기 뭔가 걸리길 기대해서일 거야. 그냥 매 순간을 즐기면 될 텐데. 왜 인간들은 스스로를 단정 짓고 경계 속에 가두려 하는지 몰라. 가장 견딜 수 없는 게 바로 그거야. 나도 모르게 경계 지어진 내 삶. 난 분명히 경계 짓지도 경계하지도 않았는데 말이야. 우습지 않아? 내 인생이 내가 아닌 타인들에 의해 정해진다는 게. (‘폭설’, 188쪽)

당신은 뭔가 결심한 듯 화장실로 향한다. 옷을 한 겹 두 겹 벗는다. 앙상한 뼈에 가죽만 걸쳐놓은 꼴이다. 나는 차마 바라볼 수 없어 눈을 돌린다. 언젠가 그곳에 머물렀던 것 같은 기억 때문에 더욱 황망하다. 당신이 화장실 바닥에 쪼그리고 앉아 몸이라고 할 수도 없는 육신을 구석구석 오래 씻는다. 그 모습이 마치 기도를 올리는 듯하다. 당신이 목욕을 마치고 거울 앞에 앉는다. 숱도 없는 머리를 오래도 빗는다. 당신에게 지난날은 부러울 게 없는 시간이었다. 나만 돌아온다면. 멈춰버린 시계만 돌릴 수 있다면. 당신은 머리단장까지 마치고 서랍장에서 새 옷을 꺼내 입는다. 아, 저건 내가 언젠가 생일 선물로 사 온 것이다. (‘북쪽 방의 침묵’, 22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