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한때는 자작나무를 탔다(개정판)

저자

김연

브랜드

한겨레출판

분야

한국문학>장편소설

출간일

2021-09-16

ISBN

9791160406368

가격

13,800원

선정 및 수상

제2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구입처

전자책

도서정보

제2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나도 한때는 자작나무를 탔다》 개정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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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부장제 사회의 굴레를 벗어던지고

자신만의 삶을 개척하려 분투하는

여성들의 우정과 연대를 그린

한 편의 로드 무비 같은 소설!

 

엄마와 딸의 자동차 여행이라는 소재를 통해, 386세대 여성들의 꿈과 좌절을 시적인 문체로 담아낸 김연의 《나도 한때는 자작나무를 탔다》가 개정판으로 다시 찾아왔다. 한때 학생운동과 노동운동에 몸담았던 80년대 학번의 30대 여성들 이야기가 주축을 이룬다. 90년대가 도래하자 그들이 대학 시절에 품었던 이상이 퇴색되고 그들은 가부장적, 여성 차별적 현실을 감당하며 뚜렷한 삶의 지향점 없이 방황한다. 주인공 수민은 열정과 혈기로 들끓었던 과거를 추억하면서, 과거에 더는 얽매이지 않고 주체적이고 자유로운 삶을 일구려는 마음가짐으로 운전대를 잡아 딸 희민과 전국 방방곡곡을 누빈다. 그가 고속도로를 질주한 끝에 마주한 강과 계곡, 숲과 산의 정경이 읽는 이에게 고스란히 전해진다. 《나도 한때는 자작나무를 탔다》는 수민의 회상과 현실 인식이 교차하며, 불투명하지만 결코 절망스럽지는 않은 내일을 향해 굽이굽이 나아간다.

 

1996년 제정된 한겨레문학상은 《나의 아름다운 정원》의 심윤경,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의 박민규, 《표백》의 장강명, 《다른 사람》의 강화길, 《체공녀 강주룡》의 박서련, 《코리안 티처》의 서수진, 《불펜의 시간》의 김유원 등 한국문학의 새로운 지형도를 그린 많은 작가를 배출해왔다. 김연의 《나도 한때는 자작나무를 탔다》는 1997년 당시 “후일담 소설이 빠지기 쉬운 자의식의 늪”을 극복했으며 “아이를 통해 이념보다도 생명과 삶에서” 대안을 찾는다는 평을 받았다. 심사는 문학평론가 김윤식·염무웅, 소설가 윤흥길이 맡았다.

 

이제는 움츠러들지 않을 거야

딸들의 찬란한 미래를 위해서

 

주인공 수민은 사상과 이념만을 중시하는 노동운동가 남편과 이혼하고, 카페를 운영하며 딸을 홀로 양육한다. 그의 친구인 인실은 정치판에 뛰어든 운동권 출신 남편을 경제적으로 악착같이 뒷바라지하면서 아이를 키우다 그만 실의에 빠지고 만다. 그들은 사뭇 다른 삶의 궤적을 그려온 것 같지만, 대학생 때 노동운동에 열렬히 참여한 동지였으며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존중하지 않는 남성 중심 사회에서 자기 뜻대로 살고자 이를 악물어야 했던 공통점이 있다. 수민이 노동운동을 그만두고 남편의 맹렬한 반대를 무릅쓴 채 아이를 낳아 싱글맘으로 살아간다면, 인실은 평생을 노동운동에 투신하길 원했지만 갑작스러운 임신으로 경력이 단절되어 가사노동과 돈벌이라는 이중고를 겪는다. 그들이 어떤 선택을 하건 삶은 녹록지 않게 흘러간다. 하지만 그들은 혼자가 아니다.

 

수민은 대학 후배인 혜숙의 빚을 청산해주고 잘 곳을 마련해준다. 혜숙은 그의 가족과 한솥밥을 먹게 되며, 수민이 경제활동과 양육을 병행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돕는다. 덕분에 수민은 가게를 팔아치우지도, 아이를 아예 어디에 맡기고 가게를 운영할 필요도 없다. 그들은 새로운 공동체를 꾸리며 서로의 일상을 지탱해준다. 한편, 수민은 여성의 운전과 운전하는 여성을 멸시하는 세상에서 고생 끝에 운전면허를 취득하고 차 한 대를 뽑는다. 자동차에 기름을 계속 공급할 수 있는 경제력과 운전 실력을 바탕으로, 기동력이 주는 자유와 해방을, 추억이 깃든 여행을 만끽한다. 때로는 딸과 함께, 때로는 혼자서 집을 떠났다 돌아오길 반복한다. 수민을 아내로 맞이하고 싶어 하는 강규라는 남자의 눈엔, 그가 틈만 나면 도피하고 헤매는 사람처럼 보이겠지만, 수민은 편견과 부조리에 맞서 당당하게 일어서는 연습을 부지런히 하고 있을 뿐이다. 더불어 알코올 의존으로 만신창이가 된 친구 인실을 구출해내기 위해 단호하게 차를 몰아 달리기도 한다. 자동차는 《나도 한때는 자작나무를 탔다》의 또 다른 어엿한 주인공으로서 수민의 성장과 인실의 회복을 매개하는 역할을 톡톡히 수행한다.

 

개인의 행복이냐 사회적 대의냐, 하는 이분법적 물음 앞에서 자신과 가족의 돌봄 또한 중요하며 노동운동에서 주장하는 대의란 줄곧 한쪽 성별의 대의였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깨달아가는 여성들이 있다. 그들은 노동자의 세상을 만들고자 투쟁에 헌신했던 남성들이 보지 못하는 미래를 꿈꾼다. 그것은 사회변혁을 위해 개인의 희생을 필수 불가결한 것으로 여기지 않는 미래, 여성의 가사노동을 폄훼하지 않는 미래, 아내를 남편의 뒷배경으로 전락시키지 않는 미래, 딸들이 어깨를 펴고 살 수 있는 미래가 아닐까. 수민은 눈앞을 가로막는 짙은 안개를 만나더라도, 강한 폭풍우에 휩싸인다 하더라도, 낯선 곳에서 길을 잃고 헤맨다 하더라도 더는 움츠러들지도 두려워하지도 않으리라 다짐하며 차에 오른다. 든든한 길동무이자 하루가 다르게 무럭무럭 자라나는 딸과 함께.

 

이 땅을 한번 돌아보기로, 차가 갈 수 있는 곳은 어디든. 서투른 후진은 하지 말고 전진, 전진만 계속해서. _본문 중에서

김연
1963년 전남 광주에서 태어나 연세대학교 영문과를 졸업했다. 1997년 《나도 한때는 자작나무를 탔다》로 한겨레문학상 수상, 상금으로 가평 두밀리 골짜기에 집을 짓고 마당에 자작나무 한 그루 심었다. 장편소설 《함께 가자 우리》, 《섬은 울지 않는다》, 《그 여름날의 치자와 오디》, 《나의 얼토당토않은 엄마》, 여행서 《딸과 함께 유럽을 걷다》 등을 썼다. 국제작가프로그램(IWP)에 참여한 인연으로 미국 아이오와대학에 방문학자로 ‘방문’했다. 아이오와시티, 노스캐롤라이나의 채플힐을 거쳐 지금은 조지아주 애틀랜타로 흘러들어와 고군분투 중이다.
새벽에 길을 떠나다 · 7
그곳에는 그 노래가 있었다 · 24
천둥비 내리는 밤, 숲은 · 50
눈부신 세상, 거기 섬이 있다 · 67
아리랑 고개의 여인들 · 89
너의 서까래는 부서졌고 들보는 내려앉았는가 · 110
엄마, 어디 가? · 130
서른세 살의 여자란 · 159
누가 있어 나에게 길을 가르쳐준다면 · 183
로자, 로자를 꿈꾸던 여인 · 214
세월, 그 앞에 서면 · 229
자유란 늘 달리 생각하는 사람의 자유 · 252
떠나는 사람은 언제나 · 271
잿빛 하늘, 잿빛 가족 · 292
슬프거든, 강을 마셔라 · 309
외줄 위의 세 여자 · 324
가닿을 수 없는 그리움 · 341
돌아가는 길은 아름답다 · 358

작가의 말 · 381
■ 추천사
두 가지 점이 빛나고 있다. 주인공이 아기 생일 때마다 자동차를 몰아 누비기가 그 하나로, 후일담 소설이 빠지기 쉬운 자의식의 늪이 이로써 어느 수준에서 극복되었다. 다른 하나는, 이 점이 중요하거니와, 상처 입은 사회를 치유하는 방법의 발견, 즉 아기 낳아 기르기가 그것이다. 아이를 통해 이념보다도 생명과 삶에서 대안을 찾은 것이다. _김윤식(문학평론가)

로드 픽션이 흔히 그렇듯 이 작품의 주인공 또한 여행을 통해 변화하고 성숙하는 과정을 거친다. 입때껏 남자의 눈을 통해서만 세상을 보아 버릇했던 구각을 탈피하고 자기 나름의 독자적인 시간을 획득한 다음 보여주는 선택의 결과라는 점에서 이 여성의 본디 자리로의 회귀는 한층 의미를 지닌다.
_윤흥길(소설가)


■ 본문에서
아이에 대한 엄마의 책임과 돈을 벌어야 한다는 당위 사이에서 어느 것 하나 제대로 해내지 못하면서 이쪽저쪽으로 늘 눈치만 살피며 대강대강 구렁이 담 넘어가듯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엄마가, 어른 하나 겨우 누울 수 있는 좁고 답답한 내실에서 자주 잠들어야 하는 아이에게 해줄 수 있는 유일한 선물, 그게 아이와 함께한 길 떠남이었다. _56쪽

간호사가 건네주는 아이를 처음 안아보던 순간, 수민은 혼란스러울 정도로 당황스러웠다. 그저 떨어뜨리지 않으려고 두 팔로 받아 안았을 뿐 그다음 엄마로서 제 아이에게 어떤 행동을 취해주어야 할지 알 수가 없어 오물거리는 작은 입만 들여다보고 있었다. 한 생명을 세상에 나오게 했다는 한 줄기 감격의 눈물 대신 수민은 전혀 예상치 못한 쑥스러움과 어색함에 아이의 손을 찾아 만지작거리고만 있었다. _59~60쪽

용케 울음소리로 아이를 알아낸다 하더라도 그건 여성에게 있다는 모성 본능이라고는 믿기지 않는다. 그저 가장 오랜 시간 동안 아이의 옆을 떠나지 않고 지킨 대가라고 생각할 뿐이다. _63쪽

그게 바로 당신의 한계라고, 어디선가 철호가 소리치는 것만 같다. 한계령의 한계란 한자어는 그저 찬 고개란 의미에 지나지 않는다는 걸 벌써 알아버렸지만 한계령의 수민은 자유로울 수가 없다. _106쪽

거인도, 그 거인을 필요로 했던 시대도, 거인의 커다란 걸음도, 거인의 드넓은 그림자 안에 들어 있었던 그 모든 것들도 이제 사라지고 있다. 그것들이 사라진 자리엔 무엇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또한 도래할 것인가. _129쪽

스무 살 무렵엔 자신이 나중에 운전을 하게 될 거라고 꿈조차 꿔보지 않은 것처럼 여자가 차 사고를 당하고 인간적 대접을 받으려면 반드시 그 옆에 남자란 든든한 산이 버티고 있어줘야 한다는 현실 또한 전혀 생각해보지 못한 일이었다. _153쪽

“수민 씨, 살면서 이게 아니다 싶거나, 이게 사는 건가 싶을 때 차에 기름만 든든히 넣고 달리세요. 아무 생각 하지 말고. 달리고 싶을 때 달리고 쉬고 싶을 때 쉬고, 그렇게. 수민 씨는 속도광의 기질이 보이니깐.” _155쪽

누가 저 여자의 가치관 속에 남성은 여성보다 훨씬 우월한 존재라는 편견을 심어놓았을까. 태어나지도 않은 손자에 대해선 온갖 기원과 축복을 아낌없이 퍼부으면서도 정작 둘이나 있는 손녀들에 대해선 보고 싶다는 말 한마디 한번 쏟아내지 못하도록 누가 저 여자의 뇌를 통제하고 있는 걸까. _178~179쪽

저 남자에게 묻고 싶다. 당신은 스무 살 때 계급제도와 여성의 소외에 대해 어떻게 이해했으며 서른이 넘었을 땐 가부장제 사회란 걸, 책에서가 아니라 이 땅에서 어떻게 몸으로 느꼈으며 지금은 당신 딸들의 미래에 대해 무엇을 보고 있냐고. _179쪽

술집으로 돈을 번 엄마의 피를 물려받은 여자, 밤늦게 시끄러운 음악에 맞춰 춤이나 추는 여자, 술이나 마시고 눈물이나 쏟는 리버럴한 여자, 언제 저 여자가 대열의 선두에서 각목을 들고 설친 적이 있나 할 정도로 눈이 크고 겁이 많은 여자. _244쪽

세상에 술만 한 위안이 없음을 깨닫게 되기까지는 오랜 시간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 슬플 때나 기쁠 때나 아플 때나 건강할 때나 늘 함께하겠다고 서약했던 남편보다도, 주먹을 치켜올리고 동지가를 부르며 평생 이 길을 같이 가자고 피로써 맹세했던 동지들보다도, 술은, 잠들지 못하는 밤 인실의 말동무가 돼주었고 편안하게 쉬게 해주었다. _262쪽

여자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권력을 잡아보는 때가 바로 시어머니가 되는 순간이라고 했던가. _366쪽

아이와 누각에 걸터앉아 신우대 숲을 가르고 온 바람 소리를 듣는다. 이끼 낀 돌 사이로 돌돌돌 물소리를 듣는다. 그 어떤 자연과학자라도 이 능파각에 앉아 저 흐르는 물소리가 물의 흐름이 돌에 방해받아 생겨나는 물거품 파열음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진 않으리라. 그도 이곳에선 시간이, 세월이 멈춘 듯하다고 느낄 것이다. _368쪽

철호와 헤어지고서 수민은 결심했었다. 이제 내 눈으로 세상을 보자고. 인간은 자율적이고 주체적이어야 한다고 그렇게 외쳤으면서도 정녕 자신은 세상에 두 발로 서 있었던가. 배려란 이름으로 끊임없이 그의 눈치를 봤고, 실천이란 이름으로 그와 행동을 같이했었다. 그렇게 말도 많고 탈도 많던 운동권의 사상 논쟁에서도 수민은 언제라도 한 번 자신의 목소리를 가졌던가. _374~37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