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셔

저자

백민석

브랜드

분야

한국소설/SF소설

출간일

2019-02-21

ISBN

9791160402292 03810

가격

13,000원


구입처

전자책

도서정보

김현문학패 수상 작가 백민석의

기념비적인 사이버펑크 SF 선구작!

 

《러셔》는 《장원의 심부름꾼 소년》과 《목화밭 엽기전》, 《내가 사랑한 캔디/불쌍한 꼬마 한스》에 이어 한겨레출판에서 펴내는 백민석 작가의 네 번째 개정판 소설로, 문학나눔에 선정된 장편 《교양과 광기의 일기》와 미술 에세이 《리플릿》을 더한다면 한겨레출판에서 내는 여섯 번째 책이다.

개정판의 의미를 넘어서 《러셔》가 더 특별하게 다가오는 건 이 소설이 한국 사이버펑크 문학의 선구작이라고 말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한국 SF이기 때문이다. “한국 사이버펑크 문학이 진지한 출발을 했다는 신호탄이었다.” 《러셔》를 두고 한 고장원 SF문학평론가의 말은 그래서 더 의미 있게 다가온다.

 

초고속의 삶에 중독된 사람들,

환경공해로 뒤덮인 허무한 첨단세계

 

《러셔》는 환경 재앙에 처한 도시를 배경으로, 초월자 계급, 능력자 계급, 기술자 계급, 노동자 계급으로 나뉘어진 미래의 한반도를 그리고 있다. 소설의 큰 줄기는 단순하다. 지배 권력인 초월자 계급에 의해 가동되는 시정부의 환경 정화 프로젝트에 맞서 혁명을 시도하는 능력자 ‘모비’와 여전사 ‘메꽃’의 이야기다.

사우스코리아 시(市)는 환경공해로 뒤덮인 현실세계와 오염물들을 배출해내는 일종의 쓰레기장 가상세계 ‘샘 샌드 듄’으로 나뉘는데, 현실세계의 오염물들은 ‘호흡중추’의 통제로 가동되는 ‘호흡구체’라는 거대한 팬을 통해 ‘샘 샌드 듄’으로 배출된다. 그리고 ‘모비’와 ‘메꽃’은 첫 번째 러시에서 ‘호흡구체’를 두 번째 러시에서 ‘호흡중추’를 공격한다.

하지만, 이 소설이 다른 소설과 조금 다른 건 그들이 왜 호흡중추를 파괴하려고 하는지가 분명히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들은 호흡중추가 파괴된 후의 세계에 대한 어떤 해결책도 갖고 있지 않으며, 심지어 자신들이 공격하려는 게 무엇인지조차 정확히 모른다.

 

모비는 확신이 없었다. 자기가 지금 무엇을 향해 날아가고 있는지에 대한. 이 러시의 끝에 무엇이 있을지 그는 확실히 알지 못했다. 메꽃은 당연히 메인 시스템이 이 러시의 최종 타깃인 줄 알고 있다. (…) 물론 그 끝이 정말 AI 칩 더미라면, 더할 나위 없이 다행스러운 일이다. 예측 가능한 타깃이고 퓨전 디스럽터 건 몇 방이면 끝을 볼 수 있는 타깃이니까. 그를 괴롭히는 것은 그게 AI 칩 더미가 아닐, 또 다른 가능성이었다. 더구나 그걸 어떻게 깨야 하는지 방법을 알지 못한다면. 그렇다면 그건 절망 아닌가. _본문 중에서

 

그들의 혁명은, 다만 정부 환경 정책에 경고를 내리기 위함이며, 호흡중추가 아닌 좀 더 근본적인 정부의 환경 정책을 기대할 뿐이다. 하지만, 그 분명치 않음 때문에 이 소설은 특별해진다. 우리는 소설을 읽는 내내 체제라는 허상과 싸우는 지금 우리의 모습을 돌아보게 된다.

 

우리의 세계 밑에선 현재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나

 

길드에 의해 샘 샌드 듄에 버려진 모비는 그곳에서 허밍을 내는 존재를 만난다. 모비를 쫓아온 메꽃도 그것과 마주한다. ‘폴립 군체’. 소설은 그것을 이렇게 설명한다.

 

그것은 엄연히 존재하며, 또 지금 번식하고 있는 가상 차원의 실재였다. 폴립 군체 덤불은 스스로가 스스로를 탄생시킨 생명체라고 할 수 있었다. 스스로가 스스로에게 생명을 부여한 사막의 환경 생명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그건 위험일까. 실재 차원을 넘보는 어떤 위험일까. 그런 수수께끼의 생명체들이 또 얼마나 있을지 알 수 없었다. _본문 중에서

 

폴립 군체의 존재가 알려진 지는 십 년도 더 되었지만, 그 정체에 대해선 충분히 밝혀진 게 없었다. 생태학 관련 조사가 끝이 났는지, 보고서가 쓰였는지, 그런 것도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위험한지, 위험하다면 얼마나 어떻게 위험한지, 그런 것도 없었다. _본문 중에서

 

위험. ‘모비’와 ‘메꽃’이 느낀 건 이 세계의 위험이었다. 거대 팬, 호흡 구체, 가상 차원에 가려져 보이지 않는 어떤 위기의 목소리들. 하지만, ‘호흡 구체’를 타격한 첫 번째 러시 이후에도 세계는 그저 약간의 호기심만 보일 뿐이었다. 그것이 가상 차원의 일이기 때문에. 문제가 생기면 아예 차원을 지워버리면 되기 때문에.

소설은 묻는다. 하지만, 정말 그럴 수 있을까? 정말 지워질까?

그리고 그 질문은 우리로 이어진다. 지금 우리가 사는 이 세계에도 그런 수수께끼의 생명체들이 있을까? 폴립 군체 덤불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들이, 있을까? 무수히 많은 무엇들이, 있다면, 과연 얼마나 있는 걸까? 이 질문의 끝에서야 우리는 ‘모비’, ‘메꽃’과 함께 세 번째 러시를 감행하게 되지 않을까?

백민석
1995년 〈문학과사회〉 여름호에 소설 〈내가 사랑한 캔디〉를 발표하면서 등단했다. 소설집 《16믿거나말거나박물지》 《장원의 심부름꾼 소년》 《혀끝의 남자》 《수림》, 장편소설 《헤이, 우리 소풍 간다》 《내가 사랑한 캔디/불쌍한 꼬마 한스》 《목화밭 엽기전》 《죽은 올빼미 농장》 《공포의 세기》 《교양과 광기의 일기》, 에세이 《리플릿》 《아바나의 시민들》 《헤밍웨이: 20세기 최초의 코즈모폴리턴 작가》가 있다.
초고속 바흐
올드 마켓의 중독자들
초월의 나무
작가의 말
“호흡중추는 그러니까, 가짭니까?”
질은 풋 웃어 보였다. 꼭 그렇다는 건 아냐, 하고 속삭이듯 말했다.
“네 온 신경을 아주 활짝 열어놓고 봐. 그러면 너는 거기서 무언가 진짜를 찾아내게 될 테니까.” _122쪽

그녀는 다시 한 번 대장과 싱이 메인 시스템을 이미 깼다고 말했다. 확인은 못 했지만 거의 그랬을 거라고 했다. 설혹 깨지 못했다 하더라도 충분히 피해를 입혔고 그만하면 경고가 됐을 거라고 했다. 그만하면 안일한 정부 환경 정책에 그럴듯한 경고가 됐을 거라고, 호흡중추가 마비되어 시민들이 오염 물질을 마시고 쓰러지기 시작하면 무언가 좀 더 근본적인 대책을 강구하기 시작할 거라고. 시위란 원래 혁명보다는 경고에 가까운 것이라고 했다. _164쪽~165쪽

“사는 게 재미없다면 좀 빨리 살아보지. 초 단위로, 나처럼. 하긴 빨리 살아도 마찬가지야, 허무하긴.” _186쪽

모비는 초월의 나무 어딘가에 서 있었다. 내부는 끝을 알 수 없을 정도로 넓고 깊고 높았다.
“어째 이 나무는 중심 줄기가 없는 것 같군. 줄기도 없고 뿌리도 없어…….”
그는 주위를 둘러보곤 딱히 누구에게랄 것도 없이 중얼거렸다. 나무는 땅을 지탱해서 있지도 않았고 덩치를 지탱하기 위해 땅에 내릴 뿌리도 갖고 있지 않았다. 수천 개의 가지들을 한데 묶는 기둥 줄기도 없었다. 가지들은 광휘의 잎을 잔뜩 매달고 나무 자체가 그런 것처럼 그저 공중에 떠 있었다. _209쪽

어떤 것에 대한 완벽한 확신은, 그것에 대해 더 이상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_21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