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자

저자

로베르트 발저

역자

배수아

브랜드

한겨레출판

분야

문학/독일문학/중단편집

출간일

2017-03-15

ISBN

9791160400496 03850

가격

15,000원


구입처

전자책

도서정보

“발저와 같은 작가가 지성을 주도한다면 이 세상에 전쟁이란 없을 것이다. 그와 같은 작가가 수십만의 독자를 가진다면 세상은 지금보다 훨씬 더 나은 곳이 될 것이다.” _헤르만 헤세

 

“플롯에 구애받지 않는 음악성 풍부한 문장이 자유롭게 흐르는 짧은 산문. 산문의 파울 클레라고 할 만큼 섬세하고, 능란하고, 홀린 듯이 써내려간 글이다. … 진정 뛰어난, 가슴 깊은 감동을 안겨주는 작가.” _수전 손태그

 

“나는 지금도 <툰의 클라이스트>, <헬블링 이야기>, <원숭이> 등을 처음 읽었을 때의 충격을 잊지 못한다. <산책>의 문장들을 접할 때면 저도 모르게 감탄과 충격의 비명을 지르기도 했다. … 이런 것은 한 번도 읽은 적이 없어. 나는 매혹되었다. 나는 펄쩍 뛰어오를 만큼 매혹되었다.” _배수아, <옮긴이의 말> 중에서

 

로베르트 발저의 중단편 42편을 엄선한 대표 작품집

20세기 독일문학사에서 가장 중요한 작가 중 하나이자 스위스의 국민작가 로베르트 발저의 작품집. 동시대 작가 카프카와 헤세가 그의 열렬한 애독자였고 후대 W. G. 제발트, 페터 한트케, 마르틴 발저, J. M. 쿠체 등이 그에게 문학적 영향을 받았음을 공언했다. 발터 벤야민(<로베르트 발저>, 1929), 조르조 아감벤(<로베르트 발저는 왜 그토록 중요한가?>, 2005), 수전 손태그에 의해 독일어권 밖으로도 널리 알려졌으며,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엘프리데 옐리네크는 1998년 헌정 희곡 《Er nicht als er》를 출간하여 그의 작가적 발자취를 잇기도 했다. ‘걷기’는 발저 작품의 가장 중요한 모티프로서, 실제 그는 많은 시간을 걸으며 길 위의 작은 것들에 시선을 두고 그 관찰과 사색을 작품에 담아냈다. 《산책자-로베르트 발저 작품집》는 발저가 남긴 수백편의 작품 중 그를 대표하는 중단편 42편을 엄선하여 수록한 것이다. 작가 배수아의 유려한 번역이 함께한다.

지은이 로베르트 발저
독일어권의 한 세기를 대표하는 작가이자 스위스의 국민작가이다. 1878년 4월 15일 스위스 베른 주 비엘에서 태어났다. 가난 탓에 14세에 중학교를 중퇴하고 오랫동안 하인, 사무보조, 사서, 은행사무원, 공장노동자 등의 직업을 전전했다. 틈틈이 글을 써서 신문과 잡지에 발표했고, 1904년 첫 책 《프리츠 코헤르의 작문》을 출간한다. 이후 작가로서 어느 정도 성취를 얻었지만 지성인 사회에 쉽게 어울리지 못하고 독일과 스위스를 오갔다. 1차 세계대전 발발 후 처지는 더욱 궁핍해져 끊임없이 이사를 다니다 자살을 시도하기에 이른다. 결국 1929년 스스로 베른의 발다우 정신병원에 입원했다. 1933년 절필을 선언하고 걷기와 도보여행, 종이봉투 붙이기 외에는 활동을 하지 않았다. 발저의 작품에서 가장 중요한 모티프이자 실제 삶에서도 큰 부분을 차지한 것이 바로 ‘쓰기’와 ‘걷기’다. 산책길에서 발견한 하찮고 작은 것들에 관심을 가지고 애정 어린 시선을 보내던 작가 발저는, 1956년 크리스마스 아침 산책을 나간 길에서 홀로 눈밭에 쓰러져 죽은 모습으로 발견되었다. 대표작으로 <산책>, 《벤야멘타 하인학교-야콥 폰 군텐 이야기》 등이 있다.

옮긴이 배수아
소설가이자 번역가이다. 지은 책으로 《밀레나, 밀레나, 황홀한》 《푸른 사과가 있는 국도》 《바람 인형》 《철수》 《일요일 스키야키 식당》 《에세이스트의 책상》 《올빼미의 없음》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 페르난두 페소아의 《불안의 서》, 프란츠 카프카의 《꿈》, W. G. 제발트의 《현기증. 감정들》 《자연을 따라. 기초시》, 막스 피카르트의 《인간과 말》, 사데크 헤다야트의 《눈먼 부엉이》, 마르틴 발저의 《불안의 꽃》, 토마스 베른하르트의 《비트겐슈타인의 조카》 등이 있다.
시인 _7
빌케 부인 _9
크리스마스 이야기 _18
헬블링 이야기 _26
황새와 호저 _50
주인과 고용인 _57
두 개의 이야기 _63
한 시인이 한 남자에게 보내는 편지 _71
나는 아무것도 없어 _77
세상의 끝 _81
티투스 _86
문의에 대한 답변 _92
시인들 _97
아무것도 아닌 것 _102
블라디미르 _106
콘라트 페르디난트 마이어 기념일에 바치는 헌사 _111
비행사 _117
그라이펜 호수 _122
한 남자가 한 남자에게 보내는 편지 _126
젬파하 전투 _129
프리츠 _144
그거면 됐다! _157
설강화 _163
겨울 _167
부엉이 _171
두드림 _174
내가 까다롭나요? _177
파리의 신문 _184
툰의 클라이스트 _186
신경과민 _203
최후의 산문 _207
꽃의 날 _217
키나스트 _222
그래, 너는 내 거야! _227
거리(I) _234
도스토옙스키의 《백치》 _239
작은 나무 _241
세잔에 대한 생각 _243
기구 여행 _250
작은 베를린 여인 _255
원숭이 _270
산책 _278
옮긴이의 말 _379
작은 것들의 세밀화가, 내면을 걷는 산책자 로베르트 발저

로베르트 발저는 27년의 정신병원 생활과 거의 그만큼의 절필 기간으로 인해 한동안 잊히는 듯했다. 그러나 헤세와 같은 문인들의 계속적인 언급에 의해 작품들이 재출간되었고, 사후 1970년대에 이르러서는 수많은 젊은 작가와 비평가들이 그의 독특한 작품세계를 이해하고 연구했다. 현재 발저는 20세기 독일문학사의 가장 중심적인 위치에 놓인 작가이다.

1878년 스위스의 독일어 사용 가정에서 자란 발저는 어려운 형편 탓에 14세에 학업을 중단해야 했다. 이후 하인, 사무보조, 사서, 은행사무원, 공장노동자 등의 직업을 전전한다. 종이조차 살 수 없는 궁핍한 생활 중에도 영수증, 전단지, 포장지, 달력 뒷면 등에 글을 썼고 그것을 끊임없이 신문과 잡지에 투고했다(수록작 <최후의 산문> 참조). 이러한 그의 삶은 그대로 글의 소재가 되었다. 당시 대중적으로 인기를 끌지 못했던 발저는 그러나 문단에서는 어느 정도 성취를 이루었는데, 그중에서도 발저보다 5살 어린 카프카가 그의 찬미자였다. 로베르트 무질은 카프카의 초기 산문 <관찰>을 읽고 “발저 유형의 독특한 예”라고 언급하며 그 유사성을 지적하기도 했다. 연구자들은 카프카의 《성》에 등장하는 두 명의 조수의 원형을 발저의 장편 《야콥 폰 군텐》(한국어판 제목 ‘벤야멘타 하인학교-야콥 폰 군텐 이야기’)에서 찾기도 한다.
카프카뿐 아니라 헤세 역시 발저를 “동시대 가장 의미 있는 스위스 작가”라 칭하며 그의 작품이 더 많이 읽히기를 바라는 글을 여러 차례 쓰기도 했다. 그러나 아웃사이더적인 면모와 정규교육을 마치지 못한 점, 스위스 방언 등의 이유로 발저는 독일이 지성인 사회에서 겉돌았고, 결국 적응하지 못하고 스위스로 돌아가기에 이른다. 발저는 잠을 자는 시간 외에는 늘 걷고 또 글을 쓴 듯하다.

바로 앞에 풍요로운 대지가 펼쳐져 있었지만 나는 가장 작고 가장 허름한 것만을 주시했다. 지극한 사랑의 몸짓으로 하늘이 위로 솟아올랐다가 다시 가라앉았다. 나는 하나의 내면이 되었으며, 그렇게 내면을 산책했다. 모든 외부는 꿈이 되었고 지금까지 내가 이해했던 것들은 모두 이해할 수 없는 것으로 바뀌었다. 나는 표면에서 떨어져 나와 지금 이 순간 내가 선함으로 인식하는 환상의 심연으로 추락했다. 우리가 이해하고 사랑하는 것이 우리를 이해하고 사랑한다. 나는 더 이상 나 자신이 아니라 어떤 다른 존재였으며, 또한 바로 그렇기 때문에 비로소 진정으로 나 자신이었다. _<산책> 중에서, p.349

발저는 산책에 강박적으로 몰두했다. 그에게 산책은 자신의 내면을 거니는 행위였고 이는 곧 그의 글의 소재와 형식이 되었다. 심상, 스케치, 우화, 단편 같은 형식 속에서 발저의 인물들은 대부분 무기력한 보통의 소시민으로 등장한다. 그들은 권력과 지배를 끔찍하게 생각하고 심지어 가난하고 초라한 자신의 생활을 유지하고자 애쓴다. 발저는 작품 속에서 고립되고 무력하나 자유로운 자신의 작은 세계를 지키고 아무것도 아닌 것들에 애정 어린 시선을 보낸다.

1차 세계대전 발발 이후 발저는 더욱 심한 경제적인 궁핍과 우울감에 시달리다 결국 자살을 시도한다. 그러나 그마저 실패하고(“나는 심지어 올가미조차 제대로 맬 줄 몰랐기 때문이다.”) 1929년 베른의 발다우 정신병원에 입원했다. 1933년 헤리자우 병원으로 옮긴 다음부터는 단 한 글자도 쓰지 않았지만(“나는 여기 글을 쓰러 들어온 것이 아니라 미치기 위해 들어온 것이니까요.”), 발저의 작품을 사랑하는 이들에 의해, 작품의 재출간을 위해 1936년 병원을 찾은 출판인 카를 젤리히에 의해 재조명되고 늦은 성공을 거두었다. 1956년 크리스마스 산책길에서 그는 눈밭 위에 쓰러져 사망한 채로 발견되었다.

발저의 작품에서 주체의 세계는 항상 내면에 있다. 하지만 이러한 우주는, 그리고 절망은, 결코 유아론적인 것은 아니다. 그것은 연민으로 가득하며, 슬픔을 동반하는 생명이라는 존재를 한시도 의식의 바깥으로 밀어내지 않는다. _수전 손태그


■ 발췌문
한 번이라도 가난하고 고독한 신세를 경험해본 자는 시간이 지난 다음에도 타인의 가난과 고독을 더 잘 이해한다. 우리는 타인의 불행, 타인의 굴욕, 타인의 고통, 타인의 무력함, 타인의 죽음을 조금도 덜어주지 못하므로 최소한 타인을 이해하는 법이라도 배워야 한다. _<빌케 부인> 중에서, p.15

내 이름은 헬블링. 아무도 내 이야기를 글로 써주거나 하지는 않을 테니, 여기서 내가 직접 나 자신의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인간들이 고도로 세련되어진 오늘날 한 사람이, 예를 들면 나 같은 사람이 자리에 앉아서 자신의 이야기를 글로 쓰기 시작하는 것은 조금도 특별하지도 이상하지도 않다. 내 이야기라고 해봐야 간단하다. 나는 아직 젊으니까, 그리고 앞으로 살아갈 날이 한참 더 남았으므로 내 이야기는 종결지을 수가 없을 테니까. 내게서 두드러지는 점이라고는 아주 심하게, 거의 과도할 정도로 평범한 인간이라는 것. 나는 무수한 인간들 중 하나이며, 바로 그 점을 나 스스로 기이하게 여긴다. _<헬블링 이야기> 중에서, p.26

한번은 이런 소식을 받았다. “당신의 산문작품이 분실되었습니다. 너무 기분 나빠 할 필요는 없으며 새로운 작품을 보내주시면 됩니다. 우리는 새 작품을 또 잃어버릴 겁니다. 그래야 당신이 또다시 새 작품을 보낼 수 있을 테니까요. 부지런히 쓰셔야 합니다. 불필요한 불쾌감은 이를 악물고 삼켜버리세요. 어쨌든 미안하게 되었습니다.” 화가 나서 이렇게 소리를 지른다고 하여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다시는 한 줄도 쓰지 않고, 아무 데도 보내지 않을 테다!” 그러면서도 나는 바로 그날 혹은 다음 날에 새로운 산문을 멋지게 써서 보냄으로써 온화한 인성의 소유자라는 내 명성에 다시금 광채를 더했던 것이다. _<최후의 산문> 중에서, p.212

그의 산책이 곧 그의 글이 되었다. 걷기는 그의 스타일을 구축한 육체였다. 걷기를 통해서 “그는 어디서나 살았고, 그 어디에서도 살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글 안에서 “하나의 내면이 되었고, 그렇게 내면을 산책했다.” _배수아, <옮긴이의 말> 중에서, p.3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