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서랍

저자

이정록

브랜드

분야

에세이

출간일

2020-09-28

ISBN

979-11-6040-424-1

가격

14원


구입처

전자책

도서정보

마음에 맑은 샘 하나가 파였다

일상이 시로 바뀌는 특별한 순간

*

세상의 모든 생을 압축하면 한 편의 시詩가 된다

이정록 시인의 첫 산문집 《시인의 서랍》 8년 만의 개정판 출간

 

“생의 구체적인 세부를 성찰하는 촘촘하면서도 그윽한 눈길이 돋보인다”는 평을 받으며 오랫동안 독자들의 사랑을 받아왔던 이정록 시인이 그 사랑에 힘입어 첫 산문집 《시인의 서랍》을 8년 만에 개정판으로 출간한다. 32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시인은 시집 《어머니 학교》, 《정말》, 《의자》, 《제비꽃 여인숙》 등을 출간하며 김수영문학상, 김달진문학상, 윤동주문학대상을 수상하였다. 또한 어린이 문학으로 영역을 넓혀 동화 《황소바람》, 《십 원짜리 똥탑》, 동시집 《지구의 맛》, 《콧구멍만 바쁘다》 등으로 꾸준히 남녀노소 모든 이의 삶 구석구석에 문학을 전해왔다. 《시인의 서랍》은 엄혹하고 지난했지만 일면 따뜻하기도, 생기 있기도 했던 생의 기록을 이정록 시인만의 해학적이고도 그윽한 시선으로 담아낸 산문집이다. 시인은 시작詩作의 모태가 되었던 지난날의 빛과 그늘을 시인의 서랍에서 고이 꺼내 보인다.

이정록
1964년 충남 홍성에서 태어나 1989년 〈대전일보〉 신춘문예와 1993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로 등단했다. 2001년 김수영문학상, 2002년 김달진문학상, 2013년 윤동주문학대상을 받았다. 주요 도서로 산문집 《시가 안 써지면 나는 시내버스를 탄다》, 시집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것들의 목록》, 《어머니 학교》, 《정말》, 《의자》, 《제비꽃 여인숙》, 《버드나무 껍질에 세들고 싶다》, 《풋사과의 주름살》, 《벌레의 집은 아늑하다》, 동화책 《나무 고아원》, 《황소바람》, 《달팽이 학교》, 《대단한 단추들》, 《미술왕》, 《십 원짜리 똥탑》, 청소년시집 《까짓것》, 동시집 《지구의 맛》, 《콧구멍만 바쁘다》 등이 있다.
어머니의 아궁이에서, 아버지의 술잔에서
웃음과 눈물이 뒤엉키며 시는 피어난다

1부 〈밥상머리〉는 시인과 시인의 가족 이야기다. 형제들의 죽음으로 평생 절망과 술을 달고 살았던 아버지, 그리고 그런 아버지를 생의 궤도로 자꾸 끌어당기며 집안의 대소사를 책임져야 했던 어머니의 이야기가 담겼다. 장남인 시인 때문에 학교를 다니지 못한 누나를 향한 미안함, 반지를 팔아 피아노값을 대는 아내에 대한 애정은 시인의 개인사를 넘어 386세대의 애환을 드러낸다. 애증과 달관, 해학이 한데 섞인 이야기에서 독자들은 생이 주는 희로애락애오욕을 온 마음으로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돈이니 여자니 술이니 화투니, 재밌고 따순 햇살만 좇아다니먼 패가망신 쭉정이만 수확허니께, 그늘 농사가 더 중허다고 말이여. 걱정거리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겄냐? 그 그늘진 담벼락에서 고추도 나오고 취나물도 나오는 거니께 말이여. 어미 말이 어떠냐? 그늘 농사 잘 지어야 인생 늘그막이 방울토마토처럼 주렁주렁 풍년이 되는 거여.”
_〈세상 모든 말의 뿌리는 모어母語다〉, 14~15쪽

2부 〈좁쌀일기〉는 시인의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의 이야기다. 때론 치기 어린 눈물을 흘리며, 때론 황당한 사건을 통과하며 인간 이정록은 깨달음을 얻고 한 발 앞으로 나아간다. 누구나 겪을 법한 소소한 일상에서 시인은 시를 건져 올리고, 삶의 도랑 곳곳에 시의 씨앗을 심는다.

“이건 아냐.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되지. 그래 새로 시작하는 거야.”
이를 악물고 두 주먹을 불끈 쥐는 순간, 세상은 다시 나를 향해 어머니가 되고 추위를 녹여줄 옷감이 된다. 마음속 넝마는 저절로 벗겨지지 않는다.
_〈처음은 언제나 처음이다〉, 185쪽

3부 〈시 줍는 사람〉은 시를 대하는 시인의 자세가 녹아 있다. 시인은 그럴싸한 ‘왕년의 빵모자’로 시인입네 하지 않고 온몸으로 시를 줍는다. 언제고 가슴을 겨누고 들이닥칠지 모르는 시상을 향해 가슴을 내밀고, 어느 때는 짜장면 그릇을 덮고 있는 오후 세 시의 신문지가 되어 시를 쓴다. 3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마음으로 시를 벼려낸 이정록 시인의 진심이 문장 구석구석에서 느껴진다.

간혹 쓸 것이 없어서 못 쓰겠다고 하소연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나는 그에게 간곡하게 말합니다. 지금 전화하는 곳에서 손에 잡힐 듯 가까이 있는 것을 말해보라고 합니다. 그걸 쓰라고 합니다. 곁에 있는 것부터 마음속에 데리고 살라 합니다. 단언컨대, 좋은 시는 자신의 울타리 문지방 너머에 있지 않습니다. 문지방에 켜켜이 쌓인 식구들의 손때와 그 손때에 가려진 나이테며 옹이를 읽지 못한다면 어찌 문밖 사람들의 애환과 세상의 한숨을 그려낼 수 있겠는지요.
_〈쓴다는 것〉, 20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