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티 픽션

저자

조남주, 정용준, 이주란, 조수경, 임현, 정지돈, 김초엽

브랜드

분야

한국단편소설

출간일

2020-6-30

ISBN

9791160403916

가격

15,000원


구입처

전자책

도서정보

조남주 정용준 이주란 조수경 임현 정지돈 김초엽

우리가 도시라 부르는 것들에 대한 일곱 편의 이야기

 

당신의 도시는 지금 어떤 모습입니까? 장르를 넘나들며 활약을 펼치는 7인의 작가가 나의 일상, 나의 도시를 새롭게 감각한 이야기, 테마소설집 《시티 픽션》이 출간되었다. 일곱 편의 단편소설과 함께 자신이 사는 도시에 대한 작가들의 인터뷰가 실렸다. 작가들은 종묘, 광화문 교보문고, 울산 공중 관람차 등을 배경으로 크고 작은 균열을 써내려간다. 그 장소에 가본 사람만이 아는 느낌, 기분, 분위기는 7인의 상상력으로 조금씩 뒤틀리고 전복되며 우리가 아는 도시를 새롭게 채운다. 그들이 펼쳐낸 익숙한 도시의 낯선 풍경은 갑갑한 매일이 반복되어 마음까지 움츠러든 지금, 우리에게 더욱 각별하게 다가온다.

조남주
2011년 《문학동네》로 등단. 소설집 《그녀 이름은》, 장편소설 《귀를 기울이면》, 《고마네치를 위하여》, 《82년생 김지영》, 《사하맨션》, 《귤의 맛》이 있다.

정용준
1981년 광주에서 태어났다. 2009년 《현대문학》 신인 추천으로 등단했고, 소설집 《가나》, 《우리는 혈육이 아니냐》, 중편소설 《유령》, 《세계의 호수》, 장편소설 《바벨》, 《프롬 토니오》, 동화 《아빠는 일곱 살 때 안 힘들었어요?》가 있다.
이주란
1984년에 태어났다. 2012년 《세계의문학》 신인상에 단편소설 〈선물〉이 당선되어 등단했다. 소설집 《모두 다른 아버지》, 《한 사람을 위한 마음》이 있다. 김준성문학상, 젊은작가상을 수상했다.

조수경
글·그림·여행. 세상 구경 실컷 하고, 아이들과 동물들을 사랑하면서 살다 가고 싶은 소설가. 경희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고, 2013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단편 〈젤리피시〉가 당선되어 등단했다. 장편소설 《아침을 볼 때마다 당신을 떠올릴 거야》로 소나기마을문학상 황순원신진상을 수상했다. 소설집 《모두가 부서진》이 있다.

임현
1983년 전남 순천에서 태어났다. 2014년 《현대문학》 신인추천에 단편소설 〈그 개와 같은 말〉이 당선되어 등단했다. 단편소설 〈고두(叩頭)〉로 제8회 문학동네 젊은작가상 대상을 받았다. 소설집 《그 개와 같은 말》, 중편소설 《당신과 다른 나》가 있다.

정지돈
2013년 《문학과사회》의 신인문학상에 단편소설 〈눈먼 부엉이〉가 당선되면서 등단했다. 〈건축이냐 혁명이냐〉로 2015년 젊은작가상 대상과 〈창백한 말〉로 2016년 문지문학상을 수상했다. 2018년 베니스 건축 비엔날레 한국관 작가로 참여했다. 낸 책으로는 소설집 《내가 싸우듯이》,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기억에서 살 것이다》, 《농담을 싫어하는 사람들》, 문학평론집 《문학의 기쁨》(공저), 중편소설 《작은 겁쟁이 겁쟁이 새로운 파티》, 《야간 경비원의 일기》, 에세이 《영화와 시》가 있다.

김초엽
1993년에 태어났다. 포스텍 화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생화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2017년 〈관내분실〉과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으로 제2회 한국과학문학상 중단편 대상과 가작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이 있다. 젊은작가상과 오늘의작가상을 수상했다.
조남주 〈봄날아빠를 아세요?〉
정용준 〈스노우〉
이주란 〈별일은 없고요?〉
조수경 〈오후 5시, 한강은 불꽃놀이 중〉
임현 〈고요한 미래〉
정지돈 〈무한의 섬〉
김초엽 〈캐빈 방정식〉
당신의 도시는 지금 어떤 모습입니까?
익숙한 도시의 낯선 단면, 그곳에 포개어진 시티 픽션의 세계

《82년생 김지영》에서 일상 속 비극을 세밀하게 그려내 폭발적인 반향을 불러일으켰던 조남주 작가는 〈봄날아빠를 아세요?〉에서 집값에 얽힌 역세권 아파트 주민들의 투명한 욕망을 드러낸다. 정용준 작가는 지진이 휩쓸고 간 서울, 무너진 종묘에서 피어나는 온기를 〈스노우〉에 담았다. 지나간 아름다운 순간을 상기시키는 정용준 작가의 소박한 문장이 돋보이는 소설이다.

일상의 작은 순간을 섬세하게 포착해온 이주란 작가는 〈별일은 없고요?〉에서 오성역 근방의 소도시를 배경으로 고통 이후 서서히 단단해지는 사람들의 시간을 담담하게 따라간다. 전작 《아침을 볼 때마다 당신을 떠올릴 거야》에서 보다 나은 삶과 죽음을 고민한 조수경 작가는 이번에는 단편 〈오후 5시, 한강은 불꽃놀이 중〉에서 청년 세대의 부동산을 향한 욕망을 대림동 골목의 풍경과 대비시킨다. 임현 작가는 〈고요한 미래〉에서 불 꺼진 광화문 교보문고에서 만난 두 사람의 기괴한 인연을 그려 궁금증을 자아낸다. 재치 가득한 문장으로 ‘낯선 이야기꾼’이라 불리는 그는 이번 작품에서 이야기의 강약을 조절하는 탁월함으로 서사의 긴장을 높인다.

《농담을 싫어하는 사람들》에서 절묘한 소설적 위트의 매력을 보여준 정지돈 작가는 〈무한의 섬〉에서 전 세계의 ‘존재’들이 사라지는 강렬한 판타지를 밤섬을 배경으로 펼친다. 마지막으로 김초엽 작가는 〈캐빈 방정식〉에서 다른 시간을 살아가는 자매의 사랑과 이해를 울산 공중 관람차의 캐빈 안에서 풀어낸다. 가슴 따뜻한 연대를 그린 SF 작품으로 독자들의 마음을 단번에 사로잡은 김초엽 작가의 저력을 이번 작품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조남주 〈봄날아빠를 아세요?〉
“알뜰하게 일군 여러분의 소중한 자산 아닙니까?”
역세권 아파트의 가치를 둘러싼 주민들 사이의 미세한 균열

서영동 주민 커뮤니티에 어느 날 닉네임 ‘봄날아빠’의 게시글이 연이어 올라온다. ‘봄날아빠’는 서영동의 장점을 나열하며 부동산 가격이 재평가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주민들은 게시글에 남겨진 단서를 서로에게 대입하며 은근하게 ‘봄날아빠’가 누구인지 추려내기 시작한다. 〈봄날아빠를 아세요?〉에는 아파트 가격에 얽힌 주민들의 관계 지형이 드러난다. 집값뿐 아니라 아이들의 성적, 직업, 학력 등에 따라 서로를 구분 짓는 인물들과 그들이 느끼는 열등감은 지금의 한국 사회를 빼다 박아놓은 듯 사실적이다. 차마 입 밖으로 꺼낼 수 없었던 솔직한 고민과 투명한 욕망을 조남주 작가는 날카로운 시선으로 풀어낸다.

정용준 〈스노우〉
“신성하고 경건했던 왕들의 안식처는 흔들렸다. 무너졌다. 그리고 불타고 말았다.”
서울 대지진으로 종묘가 불탄 지 1년, 폐허에서 피어나는 온기

종묘해설사로 근무하는 이도는 서울 지진으로 불타버린 종묘를 복구해달라며 호소하지만, 모든 곳이 ‘공사 중’인 서울에서 문화재의 복원은 생존의 문제 앞에 요원하다. 슬픔에 잠긴 이도에게 종묘의 야간 경비원 서유성은 말한다. “전 믿으려고요. 모두 슬퍼하고 있다고. 애쓰고 있다고.” 역사의 쓸모를 이야기하는 이도와 서유성의 대화에서 우리는 장소뿐 아니라 장소에 깃든 이야기까지 소중히 여기는 그들의 다정한 마음을 느낄 수 있다. 그을린 정전 한가운데 나타난 길고양이 ‘스노우’는 그들에게 돌봄을 받는 존재이면서도, 또한 폐허가 된 자리에 온기를 피워내며 지나간 고통의 시간을 따스하게 되짚게 한다.

이주란 〈별일은 없고요?〉
“모든 것이 작은, 그런 밤이었다.”
작은 다정함으로 조금씩 단단해지는 한 사람의 이야기

일상이 서서히 무너져내리던 수연은 아랫집에 불이 난 것을 계기로 사직서를 내고 엄마가 홀로 살고 있는 오성역 근방의 소도시로 내려간다. 그곳에서 수연과 엄마, K는 때때로 아직 아물지 않은 고통을 되새기지만, 새로운 일상에 녹아들며 조금씩 자신을 회복한다. 이주란 작가는 고통 이후의 삶이 어떻게 단단해지는지를 담담한 시선으로 보여준다. 동네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고, 오랜 친구와 동네를 산책하고, 새로운 인연을 만나는 소소한 매일. 별다를 것 없이 따스한 작은 도시는 그래서 태연하고 쓸쓸하며 명랑하지만 애틋하다.

조수경 〈오후 5시, 한강은 불꽃놀이 중〉
“저축하면 뭐합니까? 그동안 집값은 또 무섭게 오르는데?”
서울 중심가 30평대 아파트에 살고 싶다는 청년 세대의 꿈

의진은 부동산 유튜버의 리딩을 따라 아파트 갭투자를 시작하면서 IT회사를 그만두고 대림동의 직업소개소에서 근무하고 있다. 상품권 거래 사기로 얽히게 된 양승미의 흔적을 좇던 의진은 그녀의 비루한 삶의 자취 앞에서 자신의 삶은 다를 것이라 여긴다. 조수경 작가는 서울 중심의 30평대 아파트를 소유하기 위해 직장과 연애마저 수단으로 여기게 된 청년의 현재를 특유의 절제된 묘사와 강렬한 이미지로 예민하게 짚어낸다. 독자들은 밀려나고 또 밀려나며 끊임없이 다른 이의 부와 생을 대체하는 서울의 사람들을 소설에서 마주하게 될 것이다.

임현 〈고요한 미래〉
“여보, 아무래도 누군가 우리를 지켜보고 있는 것 같아.”
광화문 교보문고에 내가 쓴 소설의 주인공이 나타났다

소설가인 ‘나’는 신축 임대아파트로 이사한 후 불규칙한 불면과 기면에 시달리고, 몹시도 익숙한 물건들이 낯설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나’는 이 돌연한 기시감을 소재로 소설을 쓰는데, 어느 날, 소설 속의 인물이 눈앞에 나타난다. 임현 작가는 바로 다음 문장을 예측할 수 없는 독특한 스토리를 전개하며 호기심을 자극한다. 마치 평행우주처럼 동일한 물건이 두 공간에 등장하고, 우연이라고 보기 어려운 사건이 연속되며 읽는 내내 긴장을 늦출 수 없게 만든다. 독자들은 과장과 유머, 의아함과 섬뜩함이 뒤섞인 〈고요한 미래〉를 읽으며 이들의 다음 이야기를 마음껏 추측하는 재미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정지돈 〈무한의 섬〉
“하룻밤 새 정치인이 모두 사라져버렸다.”
정지돈식 위트로 버무려진 무한한 허구의 세계

정치인 아빠를 둔 열여섯 살 디아나는 아빠의 소형 보트를 훔쳐 타고 밤섬을 오가다 ‘존재’를 만난다. 존재와의 접촉 이후 디아나와 친구 ‘참치’는 세상을 다른 방식으로 감각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얼마 뒤, 전 세계의 정치인이 사라져버린다. “아빠, 그러니까 정치는 하지 말라고 했잖아요.” 〈무한의 섬〉은 허를 찌르는 풍자와 거침없는 상상력으로 가득 차 있다. 민트초콜릿 아이스크림이 무한 복제되는 밤섬에서 디아나는 고요를, 존재를, 참치를, 그리고 지구 상에 존재하는 마지막 인간으로서의 질문을 마주한다. 지구에 찾아온 혼란과 압도적인 진공을 묘사하는 작가의 태연한 솜씨는 무한한 허구의 세계로 우리를 빠져들게 한다.

김초엽 〈캐빈 방정식〉
“너도 짐작했지? 내 계산은 정확해.”
다른 시간을 살아가는 자매, 그들을 잇는 따스한 시간의 거품

물리학자 현화는 교통사고로 다른 사람들보다 느린 속도로 시간을 살아가는 ‘시간지각 지연 증후군’에 걸린다. 고통스러운 치료에서 도망친 뒤 오랜만에 동생 현지에게 보낸 편지에서 현화는 공중 관람차의 조사를 부탁하고, 둘은 함께 관람차에 오른다. 현지는 관람차에 올라타기 전까지 다시는 동일해질 수 없는 언니와 자신의 시간에 이질감을 느낀다. 그러나 ‘주머니 우주’를 발견하는 순간, 마침내 평행한 둘의 시간을 이해한다. 같은 공간에서 다른 시간을 살아가는 자매의 어긋난 틈새는 사랑과 이해로 메워지며 우리의 가슴을 따뜻하게 만든다.

■ 추천사
조남주 〈봄날아빠를 아세요?〉
세상에게 좋은 연민을 갖게 만드는 소설이 좋다. 일말의 열패감을 느끼게 할지라도.
_엄지혜(작가, 〈월간 채널예스〉 기자)

정용준 〈스노우〉
〈스노우〉는 눈으로 만든 집의 지극한 아름다움과 따듯함을 떠올리게 하는 황홀한 단편이다. 분명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그곳을, 그는 글로 남겼고―우리는 본다. 아니, 그곳에 있다.
_김봉곤(소설가)

이주란 〈별일은 없고요?〉
누군가 죽어나간 집에서도 누군가는 레몬 향을 풍기며 살아간다는 비의. 태연하고 쓸쓸하며 명랑하지만 애틋하다.
_편혜영(소설가)

조수경 〈오후 5시, 한강은 불꽃놀이 중〉
“전망 좋은 아파트”가 아득한 꿈일 수밖에 없는 서울 시민이기에, 나 또한 불안하고 외롭기에 주인공 의진이 고스란히 다가왔다.
_최희서(배우)

임현 〈고요한 미래〉
성층에서 심해로 수직 낙하하듯 임현의 소설에 빠져들게 된다. 차가운 적요의 시공간으로.
_박민정(소설가)

정지돈 〈무한의 섬〉
〈무한의 섬〉이 단편이라서 섭섭하다는 생각을 하는 건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무한의 섬〉은 귀엽고 사랑스러운 데다가 읽는 내내 웃음이 끊이지 않는 소설이다.
_오한기(소설가)

김초엽 〈캐빈 방정식〉
비로소 같은 속도로 허공을 가르며 회전하는 자매의 모습을 소설이 다 끝난 다음에도 오랫동안 마음에 그려보았다.
_서점 ‘고요서사’ 대표 차경희

■ 본문 중에서
“형, 팰라지움 올랐어, 안 올랐어? 그대로지? 팰라지움이 서영동 대장 아파튼데 팰라지움이 쭉쭉 치고 나가야 동아랑 현대랑 우성이 다 따라가지.”
그걸 왜 나한테 따져? 나도 쭉쭉 치고 나갔으면 좋겠다, 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애써 삼켰다. 축구회 형님은 부모 잘 만난 놈들끼리 잘 해보라면서 운동장에 침을 한 번 탁 뱉고는 먼저 성큼성큼 걸어가버렸다. _〈봄날아빠를 아세요?〉, 21쪽

그런데 말이에요. 그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이 꼭 장소인 것 같다니까요. 그 기분과 그 느낌이 종묘라는 생각이 들어요. 갈 수도 있고 머무를 수도 있고 볼 수도 있고 그래서 묘사할 수도 있는 곳.
_〈스노우〉, 89쪽

시간은 자정을 지나 2시를 넘겼고 엄마의 방엔 엄마와 방과 내가 있었는데 엄마의 코 고는 소리도 작고 방도 작고 나의 울음소리도 작은, 모든 것이 작은, 그런 밤이었다. 아랫집 아저씨의 방화가 내가 그간 해온 오랜 고민을 해결했다는 게 어쩐지 허탈한, 그런 밤. _〈별일은 없고요?〉, 99쪽

양승미는 낡은 동네에서 밀려나고 서울에서도 밀려나 결국 멀리 떠나야 했는지도 몰랐다. 사는 게 어쩔 수 없어서, 정말 어쩔 도리가 없어서 중고나라에 가짜 판매글을 올린 건지도 몰랐다. 한강변에 있는 연석 명의의 아파트. 언젠가 그곳이 재건축된다면 거기 살던 사람들 중 누군가는 어디로 가게 될까. 어디로 가야 할까. 이런 생각들은 초고층 아파트 창밖으로 보이는 멋진 야경을 보며 다 잊게 되겠지. 잊고 살겠지. _〈오후 5시, 한강은 불꽃놀이 중〉, 184쪽

“어떻게 그럴 수 있지? 당신은 알았어? 이게 거기 있는 줄 알았던 거야?”
나는 서둘러 고개를 가로저었습니다. (…) 아마 아내도 모르기는 마찬가지인 것 같았습니다.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고 이번에는 들고 있던 책을 가리키며 계속 이상한 소리만 해대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이게 여기에 적혀 있는 거지? 어떻게 우리도 모르는 이 스카프에 대한 이야기가 여기 쓰여 있어?”
_〈고요한 미래〉, 213쪽

하룻밤 새 정치인이 모두 사라져버렸다. (…) 사우나를 하는 정치인과 SNS에 악플을 쓰는 정치인과 봉사 활동을 하는 정치인과 천막에서 농성을 하는 정치인까지. 모든 정치인이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환호성을 질러야 마땅하지만 일이 생각처럼 풀리지는 않았다. 검은 머리 외국인이 내 방문을 열고 들어왔고(혼란을 피하기 위해 부연하자면 검은 머리 외국인은 나의 생물학적 오빠다) 소리쳤다.
아빠가 사라졌어! _〈무한의 섬〉, 225~226쪽

이제 언니를 보내줘야 했다. 우리의 시공간이 어느 순간 완전히 분기되어버렸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했다. 언니의 세계를 들여다보면 하루의 스냅 사진들을 매달아놓은 끈이 끝에서 끝까지 걸려 있을 것이다. 그게 언니가 가진 세계였다. 언니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이었다. 우리가 다시 같은 시간을 점유하며 살아갈 날은 결코 오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언니는 그 시간을 계속 살아갈 것이다. _〈캐빈 방정식〉, 30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