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죽음은 처음이니까

저자

권혁란

브랜드

한겨레출판

분야

국내도서 > 한국문학 >에세이

출간일

2020-01-28

ISBN

9791160403411

가격

14,000원


구입처

전자책

도서정보

페미니스트 저널 「이프」의 전 편집장이자, 오랫동안 책을 만들고, 글을 써온 권혁란 작가는 무의미한 고통에 시달리다 느리게 죽어간 엄마의 날들을 섬세하게 그려낸다. 온몸은 보랏빛 반점으로 뒤덮이고 깡마른 뼈와 피부 사이의 한 점 경계 없는 몸으로, 제 발로, 제 손으로 용변조차 볼 수 없어 도우미의 손을 빌려야 했던 엄마의 모습을 진솔하게 써내려간다.
저자는 ‘늙은 부모’를 모시는 ‘늙은 자식’들이 현실적으로 어떤 어려움에 처해 있는지를 꼬집는다. 백세 시대·장수 시대는 과연 축복인지 재앙인지, 노인 인구가 점점 더 늘어나는 이 시대에 노인 부양의 책임이 오롯이 한 가족에게만 있는지 되묻는다. 요양원이나 요양병원의 도움을 받는 자식들에게 ‘부모를 버리고 패륜을 저지른 자식’이라며 손가락질하는 사회적 시선을 이제는 거두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충북과 경기의 도계 산골에서 태어난 지 꽤 오래되었다. 시 쓰고 소설을 쓰려고 문학을 전공했으나 이름 뒤에 직업명으로 쓸 만큼 성공하진 않았다. 페미니스트 저널 《이프》에서 오래 일하며 잡지와 책을 만들었다. 심장의 속도로 걸어온 천 일간의 치유 여행 《트래블 테라피》를 펴냈으며, 다른 이들과 함께 《엄마 없어서 슬펐니?》 《나는 일하는 엄마다》를 썼다. 스리랑카에서 2년간 한국어교사로 일하며 살았던 덕에 EBS 세계테마기행 〈인생찬가! 스리랑카〉 편 큐레이터가 되었다. 남에게 나를 소개할 때 ‘하도 이리저리 여러 일을 해서 뭐라고 해야 할까’ 싶어 종종 우스운데, 앞으로도 뭐가 될지 전혀 몰라 더 재미있다.

평생 읽고, 쓰고, 보고, 노래하고 싶어 했던 엄마 대신, 무학의 엄마 대신 내가 읽고, 쓰고, 보고, 노래하고 있다.
프롤로그-존엄하고 아름다운 죽음을 찾아서

1부 봉황의 이름을 가진 한 여자의 마지막 2년

엄마는 내 엄마니까
돌아갈 집이 없는 사람
엄마가 살아야 할 곳은 여기야
나는 언제나 집으로 돌아가니
내가 잘 때 누가 나를 때리나 봐
한없이 밝은 양성모음으로만
울기만 해봐요, 다신 안 보러 올 거야
사람 머리가 까매야 예쁘지
싸리꽃 한 잎 같은 이빨 하나
영혼의 음료, 뜨거운 믹스커피
빨간 주머니는 노란 밤벌레의 집
터무니없이 착하기만 해
권 안과 선생과 박카스

2부 엄마의 죽음은 처음이니까

새벽 1시, 이상한 사설 응급차
응급실에 퍼지는 한 서린 욕
엄마를 사랑하지 않을 수도 있잖아
엄마 빤스에는 주머니가 많아서
기로 풍습, 죽음을 나르는 지게
아기 같은 엄마의 아랫도리
굿’바이, Good & Bye
‘밴드’ 속 엄마의 꽃 같은 날들
섬망의 징후, 헛것과 싸우다
이승에서 못다 한 말

3부 새해에 그렇게 떠날 줄은 아무도 몰랐지

작별까지 마지막 12일
오늘은, 죽지 말아주세요
“엄마한테 졌다, 손힘이 장사 같아”
정말 저승사자가 오나 보다
보내드릴 모든 준비가 되었는데
장하다 김봉예, 가엾다 김봉예
꿈처럼 어여 가요, 제발
이제 임종을 기다리지 않겠다
“다 빼주시면 안 돼요?”
이승이여 안녕, 인사도 없이
마침내 피안으로 건너가다
저승꽃, 마지막으로 피는 꽃

4부 우리는 모두 고아가 되었다

장례식장이 유치원처럼 명랑했다
두 나무가 스물아홉 그루로
관도 무덤도 없이 나무 아래로
당신이 남긴 것들
아무렇지도 않게 벚꽃이 날리던 날
‘내 집’에서 ‘짧게’ ‘앓다’가
내 생의 마침표는 내가 찍으려 해
불문곡직, 장례식에 아무도 부르지 마라

5부 엄마 없이, 인생찬가

엄마 올 때까지 기다릴 거야
어딜 가, 국수 먹고 가야지
냉이 속에 숨겨둔 신사임당
엄마가 살던 마지막 집
단톡방 ‘김봉예의 자식들’
절대로 저 딸에게 매달리진 않으리라
아무에게도 엄마를 부탁하지 말아요

에필로그-죽음의 이야기가 필요했다
“부모의 죽음은 처음이니까”
구순 엄마와의 마지막 2년을 담은 에세이

“죽음, 거참 누가 차가운 거랬니,
끼고 있던 슬픔이라는 장갑을 벗고
그 손으로 수저를 들어 밥을 먹게 하는 이야기”

누군가 돌보지 않으면 안 되는, 타인의 손길에 목숨을 맡겨야 살 수 있는 존재, 애기와 노인. 여기, “귀엽지도 않은 애기”가 되어버린 구순 엄마의 마지막 나날을 기록한 저자가 있다. 페미니스트 저널 《이프》의 전 편집장이자, 오랫동안 책을 만들고, 글을 써온 권혁란 작가는 무의미한 고통에 시달리다 느리게 죽어간 엄마의 날들을 섬세하게 그려낸다. 온몸은 보랏빛 반점으로 뒤덮이고 깡마른 뼈와 피부 사이의 한 점 경계 없는 몸으로, 제 발로, 제 손으로 용변조차 볼 수 없어 도우미의 손을 빌려야 했던 엄마의 모습을 진솔하게 써내려간다.
이 책이 여타의 책들과 다른 점은 단지 사모곡이나 애도의 말들만 담은 책이 아니라는 점이다. 저자는 여섯 자식이나 두었던 엄마가 왜 요양원으로 갈 수밖에 없었는지, ‘늙은 부모’를 모시는 ‘늙은 자식’들이 현실적으로 어떤 어려움에 처해 있는지를 꼬집는다. 백세 시대·장수 시대는 과연 축복인지 재앙인지, 노인 인구가 점점 더 늘어나는 이 시대에 노인 부양의 책임이 오롯이 한 가족에게만 있는지 되묻는다. 요양원이나 요양병원의 도움을 받는 자식들에게 ‘부모를 버리고 패륜을 저지른 자식’이라며 손가락질하는 사회적 시선을 이제는 거두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부모가 자식들 집에서 ‘징역살이’ 하듯 사는 것보다 요양 전문 기관에서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사는 것이 자식과 부모 모두에게 더 행복할 수 있다고 말한다.

부모가 아파서 혼자 움직이지 못하고 온몸이 무너져 내리고 까만 반점이 솟아나는 걸 보며 그래도 살아야 하는 자식은 나날이 마음이 널뛴다. 좋은 밥 한 끼를 놓고도, 명랑한 웃음 한 번에도 뒤통수가 당긴다. ‘자식이 이래도 되나? 부모가 아픈데.’ 그리움보다 죄의식과 부담에 목이 아프다. 나날이 삭고 정신마저 혼미해져 자식들 이름조차 헷갈릴 때, “내가 오래 살아 네가 고생이구나” 청승스레 울 때, 그래도 고기가 먹고 싶다고 홀연 눈을 빛낼 때, 수없는 모든 순간에.(본문7쪽)

매일매일 혼자 방 안에 갇혀 있는 노인들이나 그 노인들을 두고 자기 삶을 사는 자식들이나 누굴 탓할 게 아니었다. 누가 학대할 마음으로 부모를 붙잡아 두겠는가. 어느 부모가 자식을 괴롭히려고 숨 쉬고 움직이겠는가. 한 공간에 다른 존재 둘이 갇혀 살다 보면 둘 다 나쁜 사람이 될 수밖에 없다. 존재가 존재를 미워하게 되는 것,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상대를 괴롭히게 되는 게 부모 자식 간이라고, 엄마와 딸 사이라도 다를 것은 없다. … 누군가 하나는 온전히 다른 하나에게 기대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면 더더욱 힘들 수밖에.(본문30쪽)

“아무에게도 엄마를 부탁하지 말아요”
지혜롭게 노년을 준비하는 법

“살구나무 꽃이 환하게 핀 요양원에
엄마를 보내고 집으로 돌아온 날,
나도 자식들 눈에 나이 들어가는 엄마가 되어 있었다”

총 5부로 구성된 이 책은 저자의 어머니가 심근경색으로 쓰러져 병원에 입원한 뒤 종합병원에서 요양병원으로, 다시 요양병원에서 요양원으로 옮겨져 임종하기까지의 이야기를 섬세하게 기록했다.
1부에서는 살구나무 꽃이 환하게 핀 요양원에 엄마를 보내게 된 사연과 엄마가 요양원에 입소한 뒤 벌어지는 에피소드를 그린다. 옆 침대 할머니의 가지런하고 예쁜 틀니를 보고 하나 남은 생니를 뽑아 달라고 떼를 써서 치과에 데리고 갔던 이야기, 엄마가 딸에게 주려고 바지 주머니 속에 소중히 간직했던 밤을 받아들었다가 오글거리는 밤벌레를 보고 천장까지 던져버린 이야기 등 피로하고 지칠 법한 상황에 공감이 가면서도 피식 웃음이 터져 나올 만한 일화가 가득하다.
2부에서는 요양원과 종합병원을 수차례 왔다 갔다 하는 과정과 섬망의 징후가 찾아온 엄마의 모습을 그린다. 그리도 착해, 가장 가까운 사람을 괴롭히고 남에게는 모진 말 하나 못 했던 엄마는 죽기 직전 ‘섬망’에 빠진다. 딸자식도 생전 처음 들어보는 욕을 허공에 대고 하는 대목에서는 인간이 실제 죽음을 맞이할 때, 얼마나 아름답지 못한 장면을 맞이해야 하는지 알게 한다.
3부에서는 요양원에서 생활하던 엄마가 급격히 건강이 악화되어 병원에서 임종을 맞이하기까지의 마지막 시간을 담았다. 숨이 끊어질 듯 말 듯, 열이틀간을 반송장 신세로 천천히 죽어간 엄마를 보며 저자는 생각한다. 당사자의 의사는 제외된 채, 불합리하고 무의미한 고통을 겪는 사람을 누구 하나 죽을 수 있게 돕지 못하는 게 과연 옳은 것인지에 관해.
4부에서는 ‘이렇다 할 특징’ 없고 밋밋하게 살다 돌아가신 엄마를 추억하며 수목장으로 간소하게 치른 장례에 관해 이야기한다. 장남·장손으로 이어지는 봉제사의 고리를 끊어낸 큰오빠와 몇 달 뒤 ‘내 집’에서 ‘짧게’ 앓다 돌아가신 시어머니를 가족장으로 치르는 장례를 바라보며 불필요한 장례 문화와 제사 문화를 돌아보게 한다.
5부에서는 엄마를 떠나보낸 뒤 ‘고아’가 된 마음과, 이제는 보려고 애써도 어디에 있는지 몰라 허청거리게 된 순간들에 관해 이야기한다. 저자는 딸들에게는 짐이 되지 않기 위해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미리 써두고 엄마가 남긴 옷가지들을 주워 입고 죽음에 관련된 글과 영화만을 보며 엄마 없이, 인생찬가를 부른다.

우리는 모두 언젠가 늙을 것이고 우리 부모들을 요양원에 보낼 것이고 우리도 가게 될 것이다. 누구도 생의 마지막과 보살핌을 자식에게만 맡길 수 없을 것이다. 자식이 없는 사람이 점점 많아지고 남편이나 아내가 없는 사람도 더 많아질 것이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키우고 있다고 한들 어차피 우리는 모두 단독자로 살아가다 죽을 것이다. 지금 우리의 자식들도 천천히 늙을 것이고 우리 세대의 사람들을 요양원에 보내야 하는 것으로 마음을 아프게 앓을 것이다. 부모를 지고 간 지게에 내가 오를 것이고 그 지게를 내 자식이 지게 될 것이고 그 아이 또한 지게를 지게 될 것이다.(본문 121~122쪽)

죽는 건 본인인데 그 죽음의 과정에서 철저하게 소외된 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은 엄마만이 아니었다. 그의 배에서 태어나 그의 젖을 빨아먹고 자란 자식들도 똑같았다. 동의서에 사인하라니 그렇게 하겠다고 동의했을 뿐 엄마의 죽음에 개입할 수는 없었다. 죽어가는 엄마를 사랑한들 사랑하지 않은들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기다리다가 가래를 빼줄 뿐, 입술을 닦아줄 뿐, 일분일초도 그의 몸에 찾아온 아픔이나 고통, 긴급한 과정에 개입할 수는 없었다.(본문 201쪽)

“내 생의 마침표는 내가 찍으려고 해”
존엄하고 아름다운 죽음에 관하여

“무슨 미련이 남아 저리도 고통스럽게 살아 계시는 걸까.
엄마는 결국 모질게 살아남아
자식들 고생시키는 사람이 된 것 같았다”

이 책에서 저자는 종합병원과 요양병원, 요양원과 호스피스 병원 체계, 우리나라의 사설 응급 체계, 장례 체계, 연명 치료를 거부할 수 있는 ‘사전연명치료거부동의서’ 등 죽음에 가까워질수록 꼭 알아두어야 할 정보들과, ‘좋은 죽음’을 위해 해야 할 것들을 이야기한다. 인간이 늙고 병들었을 때 실제로 어떤 최악의 상황이 펼쳐질 수도 있는지 알고 대비할 수 있도록 한다.
저자는 2년이라는 시간 동안 좋아질 일이라고는 절대 없을 엄마를 데리고 수술실과 응급실, 집중 치료실, 중환자실, 요양원 등을 전전했다. 그렇게 지난한 고통에 시달리다 돌아가신 엄마를 지켜보며 죽음에도 준비가 필요하다고 생각해 이 책을 쓰게 되었다. 엄마는 쉰 살이 되기 전부터 “늙으면 그냥 딱 죽고 싶다”고 말씀하셨지만, 당신 뜻대로 편히 죽지 못하셨다. 당신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연명 치료를 받으며 불합리하고 불필요한 고통 속에서 모질게 살아계셔야 했다. 저자는 그런 나날들 속에서 절대 엄마처럼 죽지 않겠다고, 늙어서 제 손으로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자신을 자식들에게도, 아무에게도 맡기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그리고 ‘내 생의 마침표를 내가 찍기 위한’ 준비를 하나씩 하기 시작한다.
이 책은 먼 미래의 일일 것만 같은 죽음에 관해 현실적으로 생각하게 한다. 오래 살아서 늙어 죽지도 못하고 고통스럽게 자식들 곁에 머무르지 않게, 가슴은 아프지만 곧 잊힐 슬픔과 조금은 달콤할 수 있는 그리움만 주고 떠날 수 있도록, 존엄하고 아름답게 죽음을 맞이할 방법을 돌아보게 한다. 늙어가는 부모와, 부모의 죽음에 관해 비슷한 경험을 한 독자들에게는 보살핌과 수발의 노고를 나누고, 위로를 전한다. 아직 겪어 보지 않은 독자들에게는 지혜를 빌려주고, 글로써 미리 채비할 시간을 줄 것이다.

내 몸에, 내 죽음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이 ‘불필요하고 불합리한’ 고통을 받고 있는데도 하나도 도와줄 수 없는 자식이 보호자인 나였다. 그 참혹한 두 달 동안 병원을 오가면서 공부를 했다. ‘엄마처럼, 저렇게, 죽지는 않을 거야.’ 하루가 더 지날수록 내가 늙을 것과 아플 것은 자명하고 죽을 것도 명확하니 뭘 더 꺼리겠는가. 아직 정신이 고만고만할 때, 아직 그나마 총기가 있을 때 버릴 것은 버리고, 지울 것은 지우고 도장을 찍을 것은 찍어야 했다. 엄마가 죽는 순간까지 하지 못한 것을 나는 준비하고 싶었다.(본문 257쪽)

사랑을 담아 기억하든 슬픔을 적셔 되새기든, 그냥 이승에서 헤어진 게 아니라 저승으로 하나둘씩 사람들을 보낸 후에는 사랑했든 안 했든 마음이 예전과 달라졌다. 만나지 않아도 어딘가에서 살아 움직이고 있을 거라 알고 있던 때와 보려고 애써도 어디에 있는지 모를 때의 허청거림은 순간마다 헛발을 딛는 것 같았다.(본문 31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