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희

저자

박유리

브랜드

한겨레출판

분야

한국장편소설

출간일

2020-5-28

ISBN

9791160403886

가격

13,800원


구입처

전자책

도서정보

513명이 죽었는데, 아무도 잘못한 사람은 없었다

형제복지원 사건의 참혹한 진실을 파헤치는 아름다운 데뷔작

 

*

 

“누구에게나 그림자처럼 결코 자를 수 없는 기억이 있다.”

 

*

 

한 시대가 만들어낸 폐허와 고통,

그 속에서 사라져간 이들을 위한 문학적 전언

 

한국 현대사에서 최악의 인권유린 사건 중 하나로 꼽히는 ‘형제복지원 사건’의 참혹한 진실을 파헤친 소설 《은희》가 출간되었다. 작가는 기자로서 ‘형제복지원 사건’을 직접 취재하고 조사한 기록 위에, 18살 소녀 ‘은희’를 둘러싼 여러 인물들의 사실과 허구적 이야기를 뒤섞어 《은희》라는 값진 소설적 진실을 만들어낸다. 군사정권 당시 벌어진 국가적 유괴와 강제 실종을 취재하며 생겨난 인간 존엄에 대한 질문은 그녀를 폴란드의 오시비엥침(아우슈비츠)으로 이끌게 되고, 결국 ‘은희’의 죽음을 파고드는 장편소설 《은희》를 쓰게끔 한다. 소설을 가득 채운 단단한 문장과 담담한 서술, 깊이 있는 묘사와 고통을 모른 체하지 않는 용기 있는 목소리는 사실을 전하는 정직함과 책임감을 밀어 올리며 깊은 문학적 울림을 완성해낸다. 또한, 절망이 희망을 앞서고 끔찍함이 아름다움을 짓누르는 한 시대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은 작가의 용기는 우리가 모든 겁과 비겁을 버리고 진실에서 눈 돌리지 않게 돕는다. 문학평론가 박혜진의 말처럼, 《은희》는 우리에게 불행을 선사하지만 이 불행에 동참함으로써 가까스로 30년 전과 다른 존재로 거듭날 수 있게 한다.

 

술 먹고 취해 길에 뻗은 남자들, 여관비를 아끼려 기차역에서 밤을 새우는 사람들, 남루한 옷을 입고 떠도는 아이들. 내무부 훈령 410호가 잡아들인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빈곤을 모아두면 풍요로워질 것으로 착각했는지도 모르겠다. 바퀴벌레와 쥐 퇴치 운동을 벌이듯이. 그렇게 우리는 청소됐다. _본문 중에서

 

1983년 부산에서 태어났다. 파괴되고 외로운 이들의 침묵을 듣는 일이 좋았다. 흙바닥에서 시가 되어버린 일기를 쓰는 시리아의 난민 소년, 헤어지는 날 우산을 내어준 영등포 집창촌의 여인, 매월 5만 원을 상납해야 주연배우의 풍경이 될 수 있었던 이름 없는 드라마 엑스트라, 4차 혁명 시대에 땅을 잃고 전국을 헤매는 화전민들에게서 살아낸다는 것의 치열함과 서글픔을 보았다. 가장 비루한 존재들의 아름답고 위대한 시간을 쓰는 것이 나의 일이라고 믿는다. 〈국민일보〉에 이어 〈한겨레〉에 이런 글을 썼다.
이해할 수 없기에 겨우 가능한 이해

형제복지원은 일정한 거주지와 직업 없이 돌아다니는 사람들을 보호하고 선도한다는 목적으로 1975년 부산에 지어진 우리나라 최대 규모의 부랑인 임시 보호소였다. 하지만, 부랑인들만 입소한 것은 아니었다. 크게는 국가와 시의 명령하에, 작게는 시청 직원과 파출소 순경들, 그리고 몇몇 시민들의 묵인하에 돌아갈 집과 가족이 있는 보통 시민, 장애인, 심지어는 어린아이들까지도 끌려갔다. 《은희》에 나오는 은희, 미연, 은수가 모두 그렇게 잡혀 온 아이들이었으며, 소대장 무열과 병호의 아버지인 문 씨 또한 그런 식으로 청소된 사람들이었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조건을 모두 빼앗겨버린 상황에서도 사람은 인간적 존엄을 지키기 위해 ‘나라는 존재가 무엇인지’, ‘내가 정말 인간이 맞는지’를 고민하고야 만다고 작가는 《은희》에서 말한다. 온몸이 텅 비워지고, 자기 자신을 잃게 만드는 공간에서 은희는 가장 인간적이고, 인간이고픈 존재였다. “왜 도망갔냐”는 물음에 “사람이 되려고”라고 답하는 은희의 모습은 그렇기에 더욱 슬프면서 아름답고, 아름다우면서도 끔찍하다.
엄마 ‘은희’를 찾아서 폴란드를 떠나와 한국 땅을 밟고도 여전히 은희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어떻게 살다가 어떻게 죽었는지 알지 못하는 입양아 준에게 끝내 진실을 말하지 못하는 미연을 우리는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이해란 건 사실 진짜 이해가 아니다. 우습게도 그것은 우리 또한 이 나라를 이해할 수 없기에 겨우 가능해진 이해이다.

미연은 그날 일을 준에게 말하고 싶지 않았다. 도망치던 은희가 죽을 만큼 맞던 그날 밤, 사람의 뼈가 으스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짐승 소리를 내며 진흙 바닥을 기어 다니던 그날, 누구도 왜 우리가 죽을 만큼 맞아야 하는지 묻지 않았다. 모든 일에 이유 따위는 필요치 않았다. 왜 이곳에 기약 없이 갇혀야 하는지, 왜 집으로 돌아갈 수 없는지, 왜 죽어야 하는지. _본문 중에서

가짜 노숙인까지 만들었던 나라를, 그들을 개조했다고 국정을 홍보했던 나라를 준이 이해할 수 있을까. _본문 중에서

준과 은희가 경남 양산의 한 요양원에 있는 형제의집 원장 방인곤을 방문하고, 가짜 검안서를 쓴 의사 조병국을 찾아 경북에 위치한 병원에 가고, 방인곤 원장을 수사했던 검사 주태석을 만나러 무덤 마을에 가는 내내 은희의 대답과 함께 건네진 ‘인간됨이란 무엇인가’란 질문은 깊은 그림자가 되어 우리의 발걸음을 따라다닌다. 은희가 그랬듯이 우리 또한 인간으로 남기 위해선 무언가로부터 도망해야 하는 걸까? 아니, 그런데 은희는 도망간 게 맞는 걸까? 자신의 삶을 걸고 다른 이들의 삶을 구하려던 건 아니었을까? 끝없이 이어지는 질문은 깊은 우물이 되어 진실에 목마른 우리 앞에 멈춰 선다.

2015년 가을, 그리고 지금,
우리는 어떤 시간을 살고 있을까?

말들은 쇳소리를 내며 조각조각 찢겨나갔다. 언어가 아닌 목소리로, 울 것 같은 얼굴로, 부들거리는 어깨로 준은 그들의 이야기를 짐작할 뿐이었다. 마이크를 쥔 남자는 몇 마디 말을 하고는 울부짖기 시작했다. 1987년 그때의 아이처럼. 말들은 바람에 날렸고 사람들은 바닥에 떨어진 울음을 밟고 지나갔다. 밟힌 울음은 소리를 내지 못했다. _본문 중에서

소설은 박인근 원장의 구속으로 뒤늦게 사건이 드러나게 된 1987년과 형제복지원 특별법이 통과되지 못하고 폐기를 앞두고 있던 2015년 가을을 실제 배경으로 하고 있다. 그리고 2020년 현재, 900일이 넘게 노숙 농성을 이어간 형제복지원 피해 생존자들의 땀과 눈물로 과거사법 개정안이 통과되었다. 소설 속 병호도 현실에서처럼 특별법 통과를 이뤄냈을까? 은희의 죽음을 둘러싼 진실을 밝히기 위한 준과 미연의 동행은 잘 끝났을까? 준과 미연은 진실의 끝에 결국 닿았을까? 수많은 질문 속에서 그래도 다행인 건 ‘만약 이번 국회에서도 법이 통과되지 못했다면, 피해 생존자와 그 가족들이 앞으로 어떤 시간을 보내게 되었을까?’라는 질문만은 할 필요가 없어졌다는 점이다.
《은희》는 형제복지원에 엮인 실존 인물들의 삶에 소설적 상상력을 더한, 문제적이며 치밀하면서도 아름다운 소설이다. 기억 때문에 현실을 제대로 살아낼 수 없는 생존자들과 기억을 잃었다는 박인근 원장 사이의 아이러니는 소설의 모티프가 되며, 은희의 캐릭터는 형제복지원에서 도망치다 붙잡혀 매맞아 숨진 김계원의 죽음에서 기인하며, 그런 김계원에게 안티프라민을 발라주었다는 윤우택의 짧은 진술은 미연의 일부분이 된다. 박인근 원장을 위해 정부에 탄원서를 제출한 문용기의 글과 복지정책의 우수성을 알린 전두환 전 대통령의 연설문, 그리고 MBC 드라마 〈탄생〉의 제작 일화 등 부랑인 청소가 사회적으로 납득되고 용인되었던 시대 배경들도 소설 여기저기에 작은 조각들로 들어가 있다. 하지만 작가가 보여주고자 했던 건 결코 재현이 아니다. 결코 드라마가 아니다. 군사정권 시대가 만들어낸 폐허와 고통 위에서 한낱 위기로만 존재 가능했던 인간의 모습이, 누구도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 사회적 묵인이, 정말 지금은 없느냐고 은희와 미연 그리고 준을 통해 끊임없이 되물을 뿐이다. 그리고 그 질문은 소대장 무열을 지나, 가짜 의사 조태석을 지나, 원장 방인곤을 지나 결국 우리에게로 돌아온다.

난 매일 머릿속을 청소해. 쓸데없는 것들을 매일 쓸어 폐기처분하는 거지. 난 병자가 아냐. 환자가 아니라고. 쓸데없는 걸 잊어가는 건 합리적인 거야. 아주 합리적인 증상인 거지. (…) 일상생활에 지장이 되는 건 없어. 지나간 시간 가운데 버리고 싶은 것들을 자동폐기하는 장치가 내 머리에 생긴 거뿐이지. _본문 중에서

형제복지원이 운영되었던 당시 전국에는 36곳의 부랑인 시설이 있었다. 하지만 형제복지원을 제외한 35곳의 시설에서 벌어진 유괴와 감금, 인권유린은 여전히 베일에 싸여 있다. 바퀴벌레와 쥐를 청소하듯 죄 없는 사람들을 잡아 가두던 그 기억들을 모두 잊은 채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과 기억을 잃어버린 건지 기억하고 싶지 않은 건지 알 수 없는 방인곤 원장의 모습은 정말 다른 걸까?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기를 원한다면, 길을 가다가 아무 이유도 없이 사라져도 누구도 의문을 제기하지 않던 그 빛 없는 시대로 다시 돌아가야 할지도 모른다.
우리가 매일 머릿속을 청소하는 대신, 쓸데없다고 여겨지는 것들을 쓸어 처분하는 대신 버려지고 은폐된 것들을 기억하고 찾아낸다면, 《은희》를 읽으며 우리의 진심이 고운 봄날 실내에 드는 햇볕처럼 한데 모인다면, 아픔도, 슬픔도, 고통도, 빛도, 어떤 이름 없이도, 찬란하고 아름다웠던 목소리를 은희에게 되돌려줄 수 있을 것이다.

■ 추천사
《은희》는 과거의 사실을 재구성하지만 결코 지나간 이야기의 복원은 아니다. 이것은 또한 죄악에 비해 한없이 가벼운 벌을 받은 어느 개인을 단죄하기 위한 소설도 아니다. 형제복지원 생존자 미연과 엄마의 삶에 은폐된 진실을 알고자 하는 아들 준이 은희의 죽음을 둘러싼 암흑의 핵심에 다가갈수록 사건에 연루된 자들의 기억은 모아지고 소설은 점차 형제복지원에 대한 거대한 ‘기억의 물질’이 되어간다. “불행은 기억을 가진 자들만의 것으로 남아야 한다”는 생각은 틀렸다. 그것은 기억을 가지지 않은 자들의 것이기도 해야 한다. 《은희》는 우리에게 불행을 선사한다. 그러나 이 불행에 동참함으로써만 우리는 가까스로 30년 전과 다른 존재로 거듭날 수 있다. 《은희》를 읽는 것은 유실된 우리 자신의 기억을 되찾는 일이기도 하다. _박혜진(문학평론가)

■ 작가의 말
국회 앞을 오가는 사람들을 만나면서 그는 문틈으로 세상을 보기 시작했다고 한다. 1987년 형제복지원 정문을 나선 이후부터 지금까지 그는 여전히 한 걸음, 또 한 걸음을 내딛고 있다. 그의 말을 빌리자면 사람이 되는 시간이다. 세상으로 돌아오는 시간이다. 짐승처럼 살아온 시간을 다는 알지 못한다. 내가 목격한 것은 그가 사람으로서, 사람답게 살아가려고 헤매던 현장이었다.
몇 년에 걸쳐 소설을 썼다. 집중적으로 쓰는 시기에는 사람들을 거의 만나지 못했다. 소설을 마무리할 무렵이 되어서야 《은희》를 쓸 수밖에 없었던 나 자신이 보였다. 매일 돌아오고야 마는 기억의 방에서, 나는 줄곧 그들을 마주했다. 기억에 조난당하지 않으려 애쓰며 그들은 국회 앞 텐트 안에서 하루를, 또 하루를 버텨냈고, 나는 내 기억의 숲에서 그들을 바라보았다.
누구에게나 그림자처럼 결코 자를 수 없는 기억이 있다. 어둠이 내리고 뒤돌아보면 언제 왔는지 모르게 나를 따라다니는 기억들이다. 지나간 시간의 문을 열고 묵묵히 걸어가는 그들과 함께, 지금 이 소설을 읽고 있을 누군가도 저마다의 기억의 방에서 나와 한 걸음 걷기를. 살아남은 아이 한종선, 국회 의원회관 지붕에 올라가 과거사법 개정안 통과를 외쳤던 최승우, 그리고 한 명의 존재로 살고 싶었던 수많은 은희들에게. 그들의 위대한 한 걸음을 응원하며.

■ 본문 발췌
미연은 그날 일을 준에게 말하고 싶지 않았다. 도망치던 은희가 죽을 만큼 맞던 그날 밤, 사람의 뼈가 으스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짐승 소리를 내며 진흙 바닥을 기어 다니던 그날, 누구도 왜 우리가 죽을 만큼 맞아야 하는지 묻지 않았다. 모든 일에 이유 따위는 필요치 않았다. 왜 이곳에 기약 없이 갇혀야 하는지, 왜 집으로 돌아갈 수 없는지, 왜 죽어야 하는지. _81쪽

그가 밥숟가락을 내려놓고 냉담하게 말할 때 미연은 돌이킬 수 없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빼앗긴 4년은 없던 일이 될 수 없었다. 표백할 수 없는 날들이었다. 기억은 그림자 같은 것이었다. 가위를 들고 들러붙은 그림자를 잘라내도 하루가 지나면 잘린 부위에서 새 그림자가 돋았다. _97쪽

사람들의 기억에는 불순물이 섞여 있어. 오늘 안에 어제가 있고, 미래 안에 지금이 있지. 내게는 아무것도 없어. 아무것도. 강물처럼 흘러가버리고 마는 거지. 댐에 쌓아둬서 괴물이 되게 하느니, 그저 기억을 방류해버리는 거지. 그는 기억을 잃어가고 있다기보다는 자신의 과거에 대해 관심이 없는 것처럼 보였다. 살인자라는 말에도 놀라는 기색이 없었다. 마치 과거와 분리되어 나온 개체 같았다. _108~109쪽

권투 해보셨습니까. 나는 아마추어 권투선수 출신입니다. 여기서도 권투가 벌어집니다. 계급을 지키려고 피투성이 경기를 하죠. 그들이 서로를 다운시킬 때까지 저는 앉아서 심판만 보면 됩니다. 관리란 그런 겁니다. 이 얼마나 쉬운 방법입니까. 나만큼 인간의 마음을, 기득권의 욕망을, 사회질서 유지의 원리를 복지시설 운영에 훌륭하게 적용한 사람은 없다고 자부합니다. 네, 그렇지요. 획기적이고 창발적인 일이었습니다. 다른 시설들은 자빠지기도 했지만 내가 운영하는 형제의집은 수용자가 나날이 늘어나 한 해 3000명을 넘겼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제일 거지가 득실거리는 더러운 부산 시내에서 거지가 사라져갔습니다. 모조리 다 잡아 가두었습니다. 숫자가 모자라면 거지라고 우겨서라도 잡아 가두었습니다. 거리가 거울처럼 환하고 깨끗해졌습니다. 청결한 질서가 생겼습니다. 누구도 구걸하지 않는 아름다운 나라, 선진국의 도시처럼 말입니다. _118쪽

사람들은 보고 싶은 것을 보고, 듣고 싶은 것만을 듣는다. 치워져야 하는 인간 이하의 부랑인들을 개조하는 곳이 있다니, 얼마나 듣기 좋은 소식인가. 치워져야 할 인간들이 소각되는 게 아니라 개조된다고 하니, 사람들은 그들을 폐기하는 게 아니라 복원하는 거라고 말하겠지. 누구도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고 그들을 치워버릴 수 있는 곳이 있으니 그곳은 낙원이 되어야 한다. _184~185쪽

낮은 집들을 지나쳐 연기가 피어오르는 굴뚝을 향해 걸었습니다. 형제의집 꼭대기에서 내려다보던 굴뚝이었습니다. 수용자들은 굴뚝에서 피어오르는 연기를 보며 시체가 타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가까이서 보니 시체를 태우는 화장터가 아닌 목욕탕 굴뚝이었습니다. 목욕 바구니를 옆에 끼고서 아줌마 두 명이 걸어 나왔습니다. 평온한 얼굴의 거리, 우뚝 솟은 전봇대, 반쯤 찢긴 채 붙어 있는 벽보들, 전구가 깨진 가로등, 일정한 간격으로 버스 정류장에서 내리는 사람들. 우리를 가둔 세상은 아무렇지 않게 굴러가고 있었습니다. 아무렇지 않은 세상을 향해 죽을힘을 다해 달려온 두 발을 내려다보며 분노를 참을 수 없었습니다. 나를 향해 사죄하지 않는 세계, 내가 사라진 동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세상의 평화로움이 소름 끼치게 무서웠습니다. 목욕탕 굴뚝 앞에서 느꼈던 무심한 평화로움이 지금도 잊히지 않습니다. _219쪽

언젠가 진상규명이 시작되면 방 원장의 하수인으로 살아온 수많은 사람들도 드러날 것이다. 아버지의 이름이 드러난다고 해도 어쩔 수 없었다. 조금은 무리한 일을 벌이고 있다는 걸 병호 자신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자신에게 브레이크를 걸 마음이 들지 않았다. 아버지의 과거 때문에 주저하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다. 진실은 드러날 것이고, 누군가는 아파하고 상처를 받으며 드러나는 게 진실이니까. 병호는 자신 또한 그렇게 상처를 받을 각오를 하고 있었다. _230~231쪽

하루는 모텔방에서 스포츠 채널을 틀어놓고 컵라면을 먹었다. 역도 경기가 중계되고 있었다. 심판이 호루라기를 불 때까지 선수는 역기를 들고 버텨야 한다. 삑 소리가 들리면 역기를 내던졌다. 자신에게도 누군가 호루라기를 불어준다면. 기억을 던질 순간이 올까. _25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