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윤지당 평전

저자

김경미

브랜드

한겨레출판

분야

역사

출간일

2019-07-12

ISBN

9791160402728

가격

18,000원


구입처

전자책

도서정보

“나의 이름은 아녀자가 아니다”

사대부 남성들이 독점한 지식세계에 도전하다

 

이 책은 오직 사대부 남성만이 학문을 논할 수 있는 조선사회에서 여성 최초로 당대 최고의 학문인 성리학에 도전하며 남성 독점의 지식세계를 뒤흔든 임윤지당의 삶과 학문을 복원한다. “남녀가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본성에 과연 무슨 차이가 있단 말이냐. 누구든지 노력하면 성인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는 유교 가부장제 속에서 억압과 차별을 내재화한 당시 여성이 이를 극복하고 학문에 도전하는 철학적 근거를 구축했다. 임윤지당의 글과 여성 지식인으로서 삶의 태도는 당대 여성들에게 상당한 영향을 끼치면서 다양한 학문 분야로 여성들이 진출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조선의 여성 지식인의 위상과 성격, 계보를 이해하기 위한 중요한 참고점이자, 한국 여성 지성사의 기점으로 평가받는 임윤지당의 삶을 만나보자.

■ 저자 김경미

이화여자대학교 이화인문과학원 교수. 이화여자대학교에서 한국고전문학을 전공하고 「조선후기 소설론」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고전소설을 젠더, 사회사적 시각에서 연구한 다수의 논문을 발표하고 한문소설을 번역했다. 조선시대 여성생활에 관한 자료를 수집, 번역해왔으며 특히 여성의 글과 글쓰기에 관심을 갖고 있다. 『여/성이론』 편집위원으로 참여했으며 여성문화이론연구소에서 활동했다. 저서로 『소설의 매혹』, 『19세기 소설사의 새로운 모색』, 『家와 여성』, 『조선의 여성들』(공저), 『노년의 풍경』(공저) 등이 있고, 역서로 『여자, 글로 말하다: 자기록』, 『금오신화』, 『19세기 서울의 사랑: 절화기담, 포의교집』(공역), 『17세기 여성생활사 자료집』(공역), 『18세기 여성생활사 자료집』(공역) 등이 있다.
발간의 글 | ‘한겨레역사인물평전’을 기획하며 - 정출헌
머리말 | 하늘에서 받은 성품은 남녀의 차이가 없다

1부 임윤지당의 가문과 어린 시절
1장 노론 명문가에서 태어나다
2장 여중군자(女中君子), 할머니 전주 이씨 부인
3장 부모의 자녀교육, 임윤지당에게 길을 열어주다
4장 남자 형제들 틈에서 공부하다
5장 함흥에서의 잔치, 그리고 아버지의 죽음

2부 내 이름은 아녀자가 아니다
1장 가문의 위기, 가례로 집안의 규율을 잡다
2장 성리학에 빠져들다
3장 재능 있는 여성들을 향한 관심 - 「송능상 부인의 전 」
4장 남자도 하기 어려운 일이 아닌가 - 「최씨와 홍씨, 두 여성의 전」
5장 의리란 무엇인가 - 예양과 보과를 논하다
6장 내 이름은 아녀자가 아니다 - 공부의 목적, 성인(聖人)

3부 시련이 찾아오다
1장 원주의 선비 신광유와 혼인하다
2장 남편의 요절, 아이의 죽음
3장 형제들의 변고
4장 시집과 친정을 오가며 마음을 다잡다
5장 남편이 남긴 필사를 잇고 발문을 쓰다

4부 성리학자로 우뚝 서다
1장 이기심성에 대하여
2장 남녀의 본성에는 어떤 차이도 없다
3장 군자는 이욕이 아니라 의리를 추구한다 - 역대 인물 평가
4장 밤낮없이 학문에 침잠하여

5부 여군자, 임윤지당
1장 아들과 오라버니의 죽음
2장 마지막 순간까지 글을 다듬다
3장 강정일당, 여성 성리학자의 계보
4장 당대 남성들의 평가

맺음말 | 차별의 언어에서 보편의 언어를 발견하다
주석
주요 저술 및 참고문헌
연보
찾아보기
“남녀의 본성에 어떤 차이가 있단 말이냐!”
임윤지당, 여성에게 금지된 사유의 영역에 도전하다

조선시대, 모든 사대부 남성들의 꿈은 성인(聖人)이 되는 것이었다. 남성들은 수양을 통해 덕과 지혜를 갖춰 최고의 인격에 이를 수 있다는 성리학 연구에 한평생 몰두했고, 국가는 이들을 위해 교육기관과 과거제 같은 제도를 만들어 사회 운영의 중심으로 삼았다. 이에 반해 양반가 여성들에게 제시된 것은 ‘삼종지도(三從之道)’의 규범이었다. 성인을 향해 구도하는 아버지, 남편, 아들에게 순종하며 집안일을 단속하는 것이 조선이 여성에게 요구하는 삶의 자세였다. 여성들은 당대 지식 언어인 한문보다는 ‘상스러운’ 한글로 필담을 나누거나, 시와 그림, 노래를 짓는 정도가 남성들이 허락해준 사유의 영역이었다.
18세기 노론 명문가의 규수였던 임윤지당(1721~1793)에게도 당대 여성들과 다를 바 없는 삶의 길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어릴 적부터 아버지와 형제들의 지도 아래 남성 중심의 가례를 따르며, 어머니 곁에서 바늘과 실을 벗 삼아 집안 살림에 보탬이 되는 베를 짜고, 여성들이 갖추어야 할 예절과 법도가 적힌 『효경』, 『열녀전』 등을 외웠다. 그런데 임윤지당이 흥미를 보인 것은 따로 있었다. 바로 남성들이 독점한 진리의 보고, 성인을 향한 공부, ‘성리학’이었다. 부모의 허락 아래 남자형제들 곁에서 어깨너머로 성현의 경전과 역사서를 읽기 시작하면서 그는 지금껏 경험해보지 못한 지적 희열을 느꼈다. “고기 맛이 입을 즐겁게 하듯이 경전이 더욱 좋아져서 도저히 그만둘 수가 없었다. 감히 세상의 법도에 얽매이지 않고 경전에 실린 성현의 교훈에 다가갔다.”(『윤지당유고』) 자연의 이치와 인간 존재의 원리가 담긴 당대 최고의 학문 성리학에 빠져들며 임윤지당은 조선의 여성들에게는 한 번도 허락되지 않은 사유와 진리탐구의 길에 나섰다.


“규방 안에는 가르쳐주고 바로잡아주는 이가 없다”
높아지는 학문, 깊어지는 지적 고독함

임윤지당은 유학의 핵심 경전과 역사 및 정치서들을 섭렵하고 조선의 중요 사상가들인 이이, 이황, 조광조, 송시열뿐 아니라 당시 떠오르는 실학가들의 글을 탐독하면서 이기심성설, 예악설, 사단칠정론 등 조선 후기의 대표적인 논쟁들까지 다룰 수 있게 된다. 자신만의 사상을 구축하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임윤지당의 학문이 그 깊이를 더할수록 그의 고독감 또한 깊어졌다. “규방 안에는 가르쳐주고 바로잡아주는 사람이 없다”(55쪽)며 자주 안타까움을 드러냈을 정도로 그는 자신의 사상을 공개적으로 검증받거나 토론할 만한 상대를 원했지만 조선은 여성에게 학문의 자리를 허용하지 않았다.
그나마 임윤지당을 인정해주고 깊이 있는 학문적 대화를 나눈 동료이자 스승이 있었다. 조선 성리학 6대가 중 한 명으로 평가받는 둘째 오빠 녹문 임성주다. 그는 임윤지당과의 서신 교환을 통해 평생 학문적 대화와 토론의 상대가 되어주었다. 흥미로운 점은 임윤지당이 임성주에게 학문적으로 많은 영향을 받았음에도 근본적인 철학적 시각에서 차이를 보인다는 것이다. 임성주와 달리 임윤지당은 성인(聖人)과 범인(凡人)의 본성은 차이가 없으며, 개별적인 삶에서 나타나는 차이는 인간의 노력에 의해 극복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이는 남성이 주도하는 지식의 장에서 억압과 차별을 내재화한 당시 여성이 이를 극복하고 학문에 도전하는 철학적 근거를 구축하는 것이었다. 이처럼 당대 최고의 석학과 대등하게 논의할 수 있었다는 것은 임윤지당의 학문적 수준을 가늠하게 해줄 뿐만 아니라, 임윤지당이 여성 성리학자로서 주류 성리학과는 상이한 관점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여성, 조선 성리학 지형에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내다
여군자(女君子) 임윤지당을 향한 남성 지식인들의 자기분열

임윤지당을 바라보는 남성 지식인들의 시선은 복잡했다. 임성주를 비롯한 임윤지당의 형제들은 비록 그가 학문하는 것을 조력 내지 묵인했지만, 정작 집안 바깥으로는 그의 학문적 위상이 알려지는 것을 꺼려했다. 임윤지당의 사유를 인정할 때조차 “여자가 해야 할 일을 했고 밤에야 낮은 소리로 책을 읽었다”며 그가 여성의 규범을 벗어나 일탈한 것이 아님을 애써 사대부 사회에 변명했다. 일부 남성 지식인들은 임윤지당을 자신들과 동등한 성리학자로서 인정하려는 움직임도 보였다. 이들은 임윤지당이 수천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여자 선비라며 그의 형제 임성주와 동등하게 거론하거나, 그를 주류 성리학 계열의 하나로까지 연결시키기도 했다. 하지만 이들의 평가도 부녀자가 도달한 학문적 수준에 비추어 자신들을 반성하는 방식으로 수렴되었고, 여성에 대한 사대부 남성의 우월적 지위를 재확인하는 데 그쳤다.
그렇다면 임윤지당은 성리학을 통해 사대부 사회에서 인정받는 명예 남성이 되고자 한 것이었을까? 임윤지당은 여러 글에서 남녀는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본성이 같으며, 여성도 수양을 통해 성인이 될 수 있음을 수차례 피력했다. 조선 성리학 지형에서 여성이라는 주체가 처음으로 등장한 것이었다. 임윤지당은 남성들이 만든 지식세계를 받아들였지만 결과적으로 이 세계에서 학문을 하는 자신은 누구인가를 끊임없이 질문하며 남성 중심의 학문적 전통과 언어에 균열을 냈다.


읽고 쓰고 생각하는 조선의 여성들
한국 여성 지성사의 기점, 임윤지당

“나는 아녀자가 아니다. 네 칼날을 더욱 예리하게 다듬어라. 내 마음의 잡초를 베어버려라.”(『윤지당유고』) 임윤지당 이전까지 조선의 여성들은 대개 문예활동으로 이름을 알렸다. 신사임당, 황진이, 허난설헌 등이 남긴 16세기의 시와 그림은 당대에 높은 평가를 받았는데, 이는 남성들이 여성에게 허락한 활동 영역이기도 했다. 하지만 18세기 들어서 임윤지당을 필두로 사대부가의 여성들이 다양한 학문 분야에 뛰어들며 남성들이 독점한 지식세계에 도전하기 시작한다. 성리학의 강정일당(1772~1832), 생활백과의 이빙허각(1759~1824), 기하학의 서영수합(1753~1823), 태교의 이사주당(1739~1821) 등이 대표적이다. 특히 강정일당의 경우 자신이 임윤지당의 글과 여성 지식인으로서 삶의 태도에 상당한 영향을 받았음을 고백하기도 했다. 한국의 역사 서술에서 여성 지식인들이 여전히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상황에서, 임윤지당은 조선의 여성 지식인의 위상과 성격, 계보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참고점이 되어준다.
“남자로 태어난다면 깊은 산속에 집을 짓고는 수백수천 권의 책을 쌓아두고 그 가운데서 늙어가고 싶다.”(77쪽) 조선의 한 여성이 남긴 이 회한은 전근대 수많은 여성들이 품었던 지적 탐구의 열망과 그 좌절을 상기시킨다. 임윤지당은 여성이 마주한 수많은 제약 속에서도 남성들이 독점해온 국가통치의 이념이자 사회윤리의 핵심 사상인 성리학을 연구하면서 독자적인 사유를 제시했을 뿐 아니라 성리학적 세계관에서 남성의 소유물에 불과했던 여성에게 독자적인 정체성을 부여하고 이를 직접 실천했다. 임윤지당은 오늘날 새롭게 쓰여야 할 한국 여성 지성사의 기점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