틈만 나면 살고 싶다

저자

김경주, 신준익

브랜드

한겨레출판

분야

에세이

출간일

2017-04-26

ISBN

979116040054003810

가격

13,000원


구입처

전자책

도서정보

“그들은 모두 틈만 나면 살고 싶은 사람들이었다.”

시인 김경주가 바라본 서른일곱 개의 인간극장

 

열심히 살고 싶었는데 열심히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야 열심히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건 어떤 아르바이트도 어떤 정치인도 어떤 선생님도 가르쳐주지 않았다. _본문 중에서

 

《틈만 나면 살고 싶다》는 시인 김경주가 보고 듣고 쓰고, 화가 신준익이 그린 일종의 르포 에세이다. 책 제목은 윤성택 시인의 시 〈홀씨의 나날〉에서 가져왔다.

《틈만 나면 살고 싶다》는 틈이라도 있다면 그 틈을 찾아 열심히 살고 싶은, 틈 밖에 존재하는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다. 작가는 ‘틈’을 찾는 사람들의 모습을 통해 우리 사회를 포착해낸다. 책에 나오는 서른일곱 명의 삶은 웃음과 울음이 적절히 섞인 한 편의 희비극으로 드러난다. 이들은 슈트액터, 중국집 배달원, 바텐더, 벨보이, DJ, 연극배우, 야설 작가, 청원 경비, 대리운전 기사, 택시 기사, 이동 조사원, 경마장 신문팔이, 동물원 사육사, 엘리베이터 걸, 달력 모델, 헬리콥터 조종사, 환경운동가, 우편집배원, 소리 채집가, 중장비 기사, 응급실 의사, 대출 상담사, 나초 레슬러 등 모두 다르게 살아가지만 비정규직이거나 일용직이고, 삶이 순탄하지 못하거나 위태롭다는 점에서, 모두 다 열심히 살아왔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모두 실존 인물이라는 것도.

“우리 주변의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를 ‘르포 문학’이라는 형식에 담아보자는 생각으로 시작했다”고 작가는 말한다. 오랜 기간에 걸쳐 한 사람 한 사람을 직접 만나 듣고 인터뷰해 재구성한 이야기는 한 편 한 편이 산문인 듯, 논픽션인 듯, 소설인 듯, 대중 교양서인 듯 여러 느낌으로 다가온다. 단 한 권의 책을 여러 겹의 이야기가 둘러싸고 있는 셈이다. 우리의 인생이 그렇듯이.

책에 나오는 인물 대부분이 10대, 20대, 30대지만 단순히 청춘들의 이야기만은 아니다. 작가는 청춘들이 아름답다거나 아프다거나, 88만 원 세대, 잉여, 루저, 헬조선이나 흙수저라는 이야기에서 한 발짝 비켜서서 청년뿐만 아니라 30대, 40대…… 그리고 노년의 삶을 살아가는 한 사람분의 이야기에 집중한다. 치킨집 사장이 되고 싶은 꿈을 위해 중국집에서 배달원으로 일하고, 정부의 공공사업 중 로또만이 유일한 희망이라고 믿으며 매일 숫자를 고르고 분석하고, 식사 때마다 진짜 천국 대신 만만한 김밥천국으로 몰려가고, 지금의 빚이 나중엔 빛으로 바뀔 거라고 강조하며 대출을 권하는, 알바나 학교나 직장에 한 번 다녀오기만 해도 하루가 다 가는 보통 사람들의 삶이 그럴싸한 포장 없이 날것 그대로 드러난다.

우리가 조금만 관심을 기울이면 하루 중 어느 순간에는 만나고야 마는 사람들, 때론 울고 싶고 때론 웃고 싶은 자신의 삶을 향해 문득 “왜?”라고 묻는 이들이 바로 이 이 책의 주인공 ‘틈만 나면 살고 싶은 사람들’이다.

 

우리는 여전히 먹고살기 어려운 시대에 살고 있다

 

“너 수능 몇 등급이냐?” “1학년 때는 1〜3등급이었어요.” “그럼 넌 치킨을 시켜 먹고 사는 인생이 될 수 있었어. 지금은 몇 등급이야?” “7등급 정도요.” “이제 넌 치킨을 튀기는 인생이 될 가능성이 크다. 공부해.” “전 공부 안 해요. 배달하며 살 거예요.” “내 아들은 수능 10등급이야. 치킨 배달이나 하며 살아야 할 거야.” _본문 중에서

 

당신은 평생을 알바만 하며 살 수 있는가? 당신은 평생을 취준생으로, 비정규직으로만 살 수 있는가? 자녀를 외국에 보내고 기러기 아빠나 기러기 엄마로 즐겁게 살 수 있겠는가? 작가가 이렇게 묻는 것은 아니다. 그저 우리 주변에서 늘 이런 일들이 벌어진다는 걸 말할 뿐이다.

 

· 우리는 한 가구의 평균 부채가 6655만 원인 시대에 살고 있다.

· 우리는 청년들 중 11.3%가 실업 상태인 시대에 살고 있다.

· 우리는 최저 임금 6470원을 8시간 기준으로 계산한 주 40시간제의 월급(유급·주휴 수당 포함, 월 209시간)이 135만 2230원인 시대에 살고 있다.

 

책 속 여러 통계들은 우리가 여전히 먹고살기 어려운 시대에 살고 있다는 걸 말해준다. 서른일곱 명 모두 열심히 일하는데도 그들은 도저히 남들이 말하는 평균치 근삿값의 삶에 다다를 수가 없다. 그 평균치가 그들에겐 버겁다.

 

· 우리 중 19.4% 정도는 배우자나 미혼 자녀와 떨어져 살게 될 거다.

· 우리 중 137만 9066명쯤은 독거노인으로 살게 될 거다.

· 우리 중 적어도 102만 명은 신용불량자가 되고 말 거다.

· 우리 중 (믿고 싶지 않지만) 1만 3513명은 자살로 생명을 잃을지도 모른다.

 

최저임금, 알바, 취준생, 비정규직, 수능 등급으로 미래가 결정된다는 건 더 이상 특별한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는 모두 최저임금을 받으며 알바를 하고, 비정규직으로 첫 직장을 시작하고, 거의 평생을 등급으로 나뉜 채 이 등급과 저 등급을 왔다 갔다 한다. 열심히 산다는 게 뭔지도 모르면서 열심히 살고 싶어서 그저 열심히 살고 있다. 그사이 우린 자신을 자랑스럽게 여길 틈도, 제대로 된 권리를 요구할 틈도, 어딘가에 앉아 쉴 틈도 전부 다 잃어버린 건 아닐까? 스펙을 쌓다 보니 인생이 쓸데없이 스펙터클해져버린 건 아닐까? 작가가 묻고 싶은 건 이런 게 아니었을까.

 

‘인간시장’이 아니라 ‘인간극장’으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른일곱 명의 사람들이 도달하는 곳은 ‘인간시장’이 아니라 ‘인각극장’이다. 그들은 비이성, 비논리, 비인간성, 비존엄성을 지나 살리고 돌보는 무대 위에 선다. 분윳값을 벌기 위해 괴수든 유령이든 뭐든 뒤집어썼던 슈트액터 ‘칼’은 액션 배우를 꿈꾸고, 야설 작가 ‘Y’는 쓰고 싶은 건 합법적 글쓰기를 시작하며, 용팔이 ‘튠’은 GPS 수리점을 차리는 꿈을 포기하지 않는다. 취업에 실패하고 도그 워킹(Dog Walking) 일을 하는 애완견 산책자 ‘잉’은 이 일이 보람차다고 말하고, 령은 심폐소생술을 거부함으로써 진짜 자신의 삶을 심폐소생하고야 만다. 헬리콥터 조종사 ‘늘’에겐 비록 멀리 떨어져 있더라도 아이들이 있다. 여하튼 우리는 모두 우리보다 나은 것의 일부가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우리가 찾는 것도 그것이라고 작가는 서른일곱 개의 틈을 통해 말하고 있다.

 

본문 속 통계들

· 6,655: 현재 가구의 평균 부채. 6655만 원. 전년에 비해 6.4% 증가. (2016년 3월 기준)

· 11.3: 15~29세 청년층 실업률. 11.3%. (2017년 3월 기준)

· 17.1: 대학생이 등록금을 마련하는 방법 중 본인이 대출(학자금 대출, 일반 대출 등)을 받거나 스스로 벌어서 마련하는 경우. 17.1%. (2016년 기준)

· 7,745,900,000,000: 마권 매출액. 7조 7459억 원. (2016년 기준)

· 1,352,230: 최저 임금 6470원을 8시간 기준으로 계산한 주 40시간제의 월급(유급·주휴 수당 포함, 월 209시간). 135만 2230원. (2017년 기준)

· 19.4: 배우자나 미혼 자녀가 타 지역(해외 포함)에 살고 있는 분거가족의 가구 비율. 19.4%. (2016년 기준)

· 1,379,066: 65세 이상의 독거노인 숫자. 137만 9066명. (2015년 기준)

· 13,513: 자살에 의한 사망자 수. 1만 3513명. (2015년 기준)

· 1,020,000: 개인 ‘금융채무 불이행자(신용불량자)’로 등록된 인원. 102만 명. (2016년 기준)

김경주
시인, 극작가, 포에트리 슬램 운동가.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시가,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희곡이 당선되었다. 시집 《나는 이 세상에 없는 계절이다》《기담》《시차의 눈을 달랜다》《고래와 수증기》, 희곡집 《블랙박스》《늑대는 눈알부터 자란다》《내가 가장 아름다울 때 내 곁엔 사랑하는 이가 없었다》《나비잠》, 산문집 《밀어》《패스포트》《펄프극장》 등이 있다. 옮긴 책으로 《라디오헤드로 철학하기》《존 레논 평전》《힙합의 시학》 등이 있다.

신준익
일러스트레이터. 2005년 여름, 프랑스에서 마주한 그래픽 노블의 다양성과 예술성에 매료되어 앙굴렘 유럽 고등 이미지 학교에 입학 단편 만화와 일러스트 작업을 시작했다. 다양한 국적의 아티스트와 전시기획자 모임인 ‘앙크르-세슈(Encre-sèche)’를 결성하여, 앙굴렘은 물론 파리, 벨기에 등에서 여러 차례 전시회를 열고 출판을 했다. 이탈리아 주간지 〈인테르나치오날레(Internazionale)〉에 단편 만화를 연재했고, 현재는 한국에서 개인 작업에 집중하고 있다.
슈트액터 칼
배달 왕국의 판
배 짓는 사람 홀
불 뿜는 바텐더 단감

고시원에 사는 벨보이 칠구
일렉트릭 번 팍
연극배우가 된 외인부대 용병 J
고스트 라이터 야설 작가 Y 군

실내야구장 달인 헉
취준생 청원경비 골
탈북 대리운전자 킨
이동 조사원 핀

경마장 신문팔이 낌
GPS 수리점을 꿈꾸는 용팔이 튠
동물원 사육사 얌
로또 분석하는 수학 선생 꽝

애완견 산책자 잉
엘리베이터 걸 텐
가짜 환자 알바생 팡
나는야 가터벨트 찬 달력 모델 핑

벽을 찾는 윌
제로를 지키는 골키퍼 완
헬리콥터 조종사 늘
나무를 끌어안는 환경운동가 P

불가능은 없는 우편집배원 헐
소리 채집가 욜
등로주의자 탈
키스방을 찾는 중장비 기사 탱

심폐소생술 권하는 령
택시론 드라이버 K
응급의학도 궁
여명의 쾡

전파사 예비 시인 탕
대출 상담사 융
실종남 컬
휴게소 고고 와이와 제이
나초 레슬러 P

작가의 말
“여보, 난 인생이 쓸모없어지는 것보단 창피한 게 낫다고 생각해. 내가 쓴 인형은 가족에게 쓸모 있는 걸 가져다주잖아.” “난 인형이랑 살고 싶진 않았다고.” 칼은 늘 멋진 액션 배우가 되기를 꿈꾸었다. 하지만 엑스트라 배우로 생활하는 건 가난하고 어려웠다. 수많은 영화 오디션을 보기도 했지만 주로 자객이나 전쟁 군인이었다. 주인공에게 얻어맞는 속칭 ‘방망이’가 되는 역할이었다. 그러다가 이 일로 들어섰다. 괴수, 유령, 마스코트…. 분윳값을 벌기 위해 칼은 닥치는 대로 일했다. 주로 뭘 뒤집어쓰는 일이었다. 뒤집어쓰는 것이 인생이라고 생각하면 그런대로 견딜 만했다. (〈슈트액터 칼〉, 12쪽)

“너 수능 몇 등급이냐?” “1학년 때는 1〜3등급이었어요.” “그럼 넌 치킨을 시켜 먹고 사는 인생이 될 수 있었어. 지금은 몇 등급이야?” “7등급 정도요.” “이제 넌 치킨을 튀기는 인생이 될 가능성이 크다. 공부해.” “전 공부 안 해요. 배달하며 살 거예요.” “내 아들은 수능 10등급이야. 치킨 배달이나 하며 살아야 할 거야.” (〈배달 왕국의 판〉, 12쪽)

“모두들 여기를 벗어나고 싶은 욕망으로 살지. 굳이 묻지 않아도 다들 목표는 ‘올해까지’거나 ‘이번 시험’이야.” (〈고시원에 사는 벨보이 칠구〉, 34쪽)

경마장에 오는 대부분의 사람이 하나같이 믿는 게 있다. 살다 보니 사람보다 말이 더 믿을 만하다는 거다. (〈경마장 신문팔이 낌〉, 79쪽)

“면접관님. 제가 왜 이 회사에 합격하지 못하는지 물어도 되겠습니까?” “모든 건 이미 정해져 있기 마련이야. 이제부턴 홀로 버려진 자신이나 잘 돌보게.” (〈애완견 산책자 잉〉, 105~106쪽)

“아저씨, 제가 왜 홈쇼핑 전화받다가 여기 온 줄 아세요?” “하루 종일 전화받기 싫어서 왔겠지 뭐.” “우리 언니가 그랬어요. 로비 종합안내 부서에 배속되려면 일단 에스컬레이터에서 일하고 그다음엔 엘리베이터를 지나면 된다고요.” “그게 뭐가 다른데? 점점 내려가는 쪽인데?” “에이, 아저씨는 진짜 세상을 하나도 모른다. 사람 같잖아요. 종합안내 부서에서 일하면 사람 같잖아.” (〈엘리베이터 걸 텐〉, 113~114쪽)

몇 달 후 방에 공벌레처럼 누워 있는 그 노인의 주검을 발견했을 때 헐은 그 집 마당에 있던 고추장 장독 단지 옆에 쭈그려 앉아 오열했다. 달동네 언덕길까지 올라오는 자신이 유일한 소식이었을 거라는 생각에 목이 메었기 때문이다. ‘집주인은 이래서 가능한 한 마주치지 않는 게 좋은 거야.’ 아무리 문을 두드려도 인기척이 없었다. 그것이 세상이었는지, 자신이 품은 질문이었는지 헐은 아직도 잘 모른다. 복역 후 처음으로 헐은 남의 집 담을 넘어 그 노파를 발견했다. (〈벽을 찾는 윌〉, 154~155쪽)

“식사 때마다 모두 만만한 천국으로 몰려가는 거지, 거 김밥천국 말이여. 가보면 거기도 너무 값에 비해 허해. 하긴 천국이라는 게 원래 좀 허망한 구석이 있잖아. 진짜 천국엔 안 가봐서 잘 모르겠지만.” (〈택시론 드라이버 K〉, 18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