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점심 먹는 사람을 위한 시집

저자

강혜빈, 김승일, 김현, 백은선, 성다영, 안미옥, 오은, 주민현, 황인찬

브랜드

한겨레출판

분야

시>한국시

출간일

2022-02-14

ISBN

9791160407594

가격

12,000원


구입처

전자책

도서정보

오늘 점심엔 무엇을 먹었나요?

당신에게 점심은 어떤 의미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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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 메뉴 선정에 진심인 사람을 위한

꿋꿋이 혼자 점심 먹는 사람을 위한

점심시간을 틈타 딴짓하는 사람을 위한,

시인 9명이 점심시간에 써내려간 시집

 

영화 〈패터슨〉에서 버스 기사인 주인공은 점심시간이면 작은 폭포가 바라다보이는 벤치에 홀로 앉아 시를 쓴다. 그가 매일 마주치는 사물과 풍경에서 시의 구절을 떠올리고 노트에 기록하는 순간, 평범하고 단조로운 일상은 사소하게 특별해진다. 그는 점심시간을 삶의 활력소이자 안식처로 여길 것이다. 점심시간은 단순히 점심 먹는 시간이 아니며, 어디에서 무엇을 어떻게 하는지에 따라 그 의미가 달라진다. 어떤 직장인에게 점심은 하루 중 유일하게 오매불망 기다려지는 휴식 시간이자 고독을 즐길 수 있는 시간일 것이고, 어떤 작가에게 점심은 창작욕이 샘솟아 끼니를 거른 채 글쓰기에 몰두하는 시간일 것이다. 강혜빈, 김승일, 김현, 백은선, 성다영, 안미옥, 오은, 주민현, 황인찬 시인은 시 다섯 편을 통해 매일 반복되는 점심의 시간과 공간에 새로운 질감과 부피를 더한다. 점심에 주목한 시가 있는가 하면, 점심과 무관해 보이지만 점심때 쓴 시도 있는데, 시만큼 점심시간을 활용해 식당이나 카페에서 읽기 좋은 작품이 또 있을까.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당신의 점심에 이 시집이 함께해 조용한 기쁨과 포근한 위로가 전해지길 바란다.

 

“점심은 빛과 어둠이 나란한 페이지

펼칠 때마다 눈을 감았다”

점심의 고유한 시간성과 다채로운 풍경들,

점심이라는 렌즈를 통해 들여다보는 시적 세계

 

강혜빈 시인은 한낮에 산책하는 화자를 내세워 점심시간의 풍경을 이루는 사람과 사물, 공간을 시의 무대로 올린다. 김승일 시인은 특유의 재치 있는 어조로 낮잠 때문에 놓친 중요한 약속과 낮잠 때문에 꾼 기묘한 꿈, 동료 시인과 만나 카페에서 시 쓰는 점심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김현 시인은 ‘마음에 점을 찍다’ 혹은 ‘마음을 점검하다’라는 점심의 본래 의미를 일깨우며 할머니가 부지런히 살아낸 시간을 햇볕처럼 따스하게 감싼다. 백은선 시인은 아침과 저녁/밤의 중간 지대이자, 하루의 시작과 끝을 체감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으로서의 점심을 다룬다. 성다영 시인은 주중과 주말을 불문하고 카페에 앉아 점심이 풍기는 주황색 냄새를 맡으며 시 쓰는 삶을 차분하고 쓸쓸하게 노래한다. 안미옥 시인은 식사와 디저트가 일상에 끼치는 영향과 그 의미를 발견해 가상의 메뉴판에 새겨 넣는다. 오은 시인은 경쾌한 리듬감과 말장난으로 지인과의 점심 만남을 묘사한다. 주민현 시인은 시간의 흐름을 정오에서 다른 정오로의 이동으로 감각하는 순간에 주목한다. 마지막으로 황인찬 시인은 점심시간에야 비로소 숨 돌릴 수 있지만 화창한 날에 공원을 잠시 배회할 뿐 또다시 회사에 묶여 있어야 하는 직장인들의 속삭임에 귀 기울인다. 이렇듯 각양각색의 시선이 돋보이는 시인들의 점심 세계에 당신을 정중히 초대한다.

 

Q. 작가님에게 점심은 어떤 의미인가요?

강혜빈: 점심은 나와 친해지는 시간. 나를 대접하는 시간. 재택 근무할 때는 어떤 음식이든 근사한 접시에 담아 플레이팅하고, 손님에게 내어주듯 한 상을 차립니다. 식사에 진심인 편이라 사랑하는 사람들이 끼니를 거르면 제가 스스로를 돌보았던 것처럼 챙겨주려고 해요.

김승일: 제게 있어 점심은 직장인들이 점심을 먹기 바로 직전의 시간입니다. 제게 있어 점심은 직장인들이 점심을 먹는 시간입니다. 제게 있어 점심은 직장인들이 아주 잠깐 앉아서 쉬었거나 테이크아웃으로 커피만 가지고 떠난 카페입니다. 점심은 텅 비었고요. 잠깐 분주했고요. 다시 텅 비었고요. 그래서 글을 쓰기에 아주 좋은 시간입니다. 모두가 열심히 삽니다. 나는 게으르고 카페는 조용합니다.

김현: 점심은 마음을 점검한다는 뜻이기도 하지요. 때론 어쩌면 자주 그렇습니다.

백은선: 자주 늦잠을 자기 때문에 점심은 하루의 시작이자 아침인 것 같아요.

성다영: 점심은 저의 기상 시간에 따라 있기도 하고 있지 않기도 한 어느 시간의 점 같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점심은 가볍게 지나가는 시간으로 느껴지지만, 늦잠을 자서 아침과 점심 사이에 하루를 시작하면 점심은 아침처럼 느껴지고 점심이랄 것도 없이 어느 하루는 지나가기도 합니다.

안미옥: 하루 중 유일하게 자유로운 시간.

오은: 저는 아침을 먹지 않습니다. 커피를 한 잔 마시는 게 다예요. 그래서 점심을 먹는 일은 하루의 시동을 거는 일입니다. 점심을 먹고 나서야 머리가 돌아가는 게 느껴질 정도로요.

주민현: 맛있는 음식을 먹고 주변을 산책하며 충전하는 시간, 뉴스 기사를 읽으며 새로운 이야기를 찾는 시간이에요.

황인찬: 낮에 잠시 숨 돌릴 수 있어 고마운 시간입니다. 그러나 하루는 이제 겨우 시작되었을 뿐이라는 것을 깨닫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강혜빈
시인. 사진가 ‘파란피(paranpee)’. 뉴노멀이 될 양손잡이. 2016년 〈문학과사회〉 신인문학상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밤의 팔레트》가 있다.

김승일
나는 정말로 점심에 시를 쓰는 사람이다. 점심에 시를 쓰지 못하면 그 날은 시를 쓰지 않는다. 보통 그렇다. 시집으로 《에듀케이션》, 《여기까지 인용하세요》 등이 있다.

김현
점심 먹지 않고 시를 쓰는 이에게 시보다 밥이 먼저죠, 라고 말해놓고 종종 점심에 시를 쓴다. 굶지 않고. 시집으로 《글로리홀》, 《입술을 열면》, 《호시절》, 《다 먹을 때쯤 영원의 머리가 든 매운탕이 나온다》, 《낮의 해변에서 혼자》가 있다.

백은선
시인. 시집 《가능세계》,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는 장면들로 만들어진 필름》, 《도움받는 기분》, 산문집 《나는 내가 싫고 좋고 이상하고》 등이 있다.

성다영
시인.

안미옥
시를 읽고 쓰는 사람. 하루 중 점심시간을 가장 좋아하게 된 사람. 시집으로 《온》, 《힌트 없음》이 있다.

오은
시를 쓴다. 틈이 날 때 하는 일은 산책, 틈을 내서 하는 일은 글쓰기다. 빈틈을 노리기보다는 빈틈을 채우는 데 골몰한다.

주민현
시인. 점심을 먹고 새로운 풍경을 수집하며 걷기를 좋아한다. 시집 《킬트, 그리고 퀼트》가 있다.

황인찬
1988년 안양 출생. 2010년 〈현대문학〉 신인추천으로 등단. 시집으로 《구관조 씻기기》, 《희지의 세계》, 《사랑을 위한 되풀이》가 있다.
강혜빈
희망 없는 산책
다가오는 점심
익선동
불 꺼진 집들
검은 문

김승일
점심
점심으로의 잠
만나서 시 쓰기
21세기에
총비

김현
잔설
겨울밤

점심
영혼 곤란 구역

백은선
만나서 시 쓰기
향기
마음의 점

낮잠

성다영
저속한 손
희생 없는 세계
점심 산책
실종
주엽나무

안미옥
알찬 하루를 보내려는 사람을 위한 비유의 메뉴판
만나서 시 쓰기
공중제비
구즈마니아
넛트

오은
우리

그것
그들
그들

주민현
또 다른 정오
빛의 광장
미술 수업
한강
오늘의 산

황인찬
철거비계
대추나무에는 사람이 걸려 있는데
저녁이 있는 삶
만남의 광장
하해

부록
혼자 점심 먹고 나서 그냥 하는 질문
오늘 참 쾌청하지요
공연히 날씨 이야기만 하게 되어도
저절로 믿어지는 사랑이 있다

뒤돌아보지 않고 떠나는 사람과
다만 빈집으로 두는 사람

“아무도 되지 않아도 괜찮아요”
_강혜빈, 〈익선동〉, 23쪽

여러분 지금이 점심이에요. 우리 세 사람은 만나서 시 쓰기고요. 우리가 여기서 다 같이 시를 쓰고 있으면, 우리가 같이 있으면, 그게 점심인 거예요. 아시겠어요?
_김승일, 〈만나서 시 쓰기〉, 41쪽

할머니와 점심 먹고 할머니가 머리를 빗겨주고
할머니랑 잤다

머리카락이 하얘지고
쌍바라지를 열면

할머니 베개에는 꽃 새 사슴
볕 든다

할머니 손 잡고
노란 나비 따라갔다
_김현, 〈점심〉, 57쪽

지나갈 거야 오늘 밤도
매일 아침에 해가 뜬다는 거
어쩐지 기적 같지 않니

어젯밤엔
어김없이 아침이 찾아오는 게 지옥 같다고
적어놓고
오늘은 네게 그런 말을 했다
_백은선, 〈향기〉, 70~71쪽

점심을 다 먹은 사람들이 주기적으로 문을 연다
무릇 문이기 때문에 열어야 한다는 듯이
점심의 주황색 냄새와 함께 들어온다
창밖의 활엽수는 흔들리고
나는 주제도 없이 무언가를 쓰고 있고요
사람들 속에서 레몬주스와 커피를 주문한다
_성다영, 〈주엽나무〉, 9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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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잠은 샌드위치처럼 쉽게 흩어진다 9.0
너의 신년 계획은 김밥처럼 위태롭고 무모하다 4.5
너의 허기는 들깨미역국처럼 불어난다 8.5
너의 앞날은 두유크림파스타처럼 뿌옇고 고소하다 13.0
너의 오후는 아보카도롤처럼 속이 편하다 9.0
오늘 기분은 김치찌개처럼 중간이 없다 7.5
오늘의 할 일 목록은 설렁탕에 먹는 깍두기처럼 제멋대로다 10.0
_안미옥, 〈알찬 하루를 보내려는 사람을 위한 비유의 메뉴판〉, 95쪽

한낮에 기우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때만큼은 사이가 좋았다. “‘사이좋다’라고 붙여 쓰는 이유가 뭔 줄 알아? 사이가 좋으니까.” 실없는 농담에도 실실 웃음이 났다. “실이 두 개나 있네?” 듣고 바로 이해하지 못해도 넘어갈 수 있었다. 아까는 배고프다는 핑계로, 지금은 배부르다는 이유로.
_오은, 〈우리〉, 109쪽

점심의 산책이란 길을 잃기에 좋아서
춤도 없이 구름이 구경꾼처럼 모이는
정오의 골목을 사랑해
뾰족한 담장과 장미는 경적을 울리고
정오의 식사
정오의 살인
정오의 텔레비전
정오의 앰뷸런스를 타고
어디선가 멈춘… 어디선가 텅 빈
골목길이 있다면
정오는 자정의 다른 말
빛은 어둠과 같은 말
_주민현, 〈또 다른 정오〉, 119쪽

요즘 위가 안 좋아요 저는 허리요 사람들이 모여서 건강을 묻고 있었는데 다들 건강을 비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것도 없었다

사람들은 어디 먼 곳에 가고 싶다고 했다
모두가 정말 맞는 말이라고도 했다

그러나 점심에는 모두가 묶여 있죠 잠시 어딘가로 떠났다가 또 금방 돌아오죠 식당과 공원은 너무 가깝고 공원은 회사와 너무 가까워서 다들 정신이 없었어요
_황인찬, 〈만남의 광장〉, 14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