딴따라라서 좋다

저자

오지혜 지음

브랜드

한겨레출판

분야

에세이

출간일

2006-04-15

ISBN

89-8431-185-5

가격

9,000원


구입처

전자책

도서정보

딴따라로 산다는 것 딴따라들의 무대 뒤 속내 이야기를 책으로 묶었다. 제 아무리 명필이라 하여도 화려함 뒤에 숨은 딴따라들의 웃음과 눈물, 질투와 꿈은 딴따라가 아니고는 풀어낼 수 없을 것이다. 이 책의 저자인 배우 오지혜는 인터넷과 언론이라는 허허벌판에 무장해제되어 상처 입기 쉬운 이 시대 딴따라들의 마음을 다독이며, 또는 공감하며 나눈 그들의 속내를 주섬주섬 펼쳐 놓는다. 밝은 배우의 아픈 이야기, 슬픈 가수의 환한 이야기, 잘난 감독의 후진 이야기…. 우리가 가장 알고 싶어하는 이들이면서도, 정작 제대로 알지 못하는 딴따라들의 자기 고백은 너무 솔직하여 무대 위에서 보이는 그들의 모습보다 오히려 아름답다. 이 책은 문화예술 바닥에서 발이 넓은 오지혜가 서른 일곱 명의 배우, 가수, 감독, 개그맨 등을 만나 <한겨레21>에 2년 여간 연재한 ‘오지혜가 만난 딴따라’와 그 뒷이야기를 한 권의 책으로 엮은 것이다.

책 맛보기 “배우나 가수, 개그맨들의 인터뷰 기사는 대한민국 언론에 차고 넘칩니다. 하지만 보통 기자들로 구성되는 인터뷰어들이 일회성 만남으로는 죽었다 깨도 흉내 낼 수 없는 게 하나 있습니다. 그건 ‘역사’입니다. 오지혜 씨는 “딴따라가 무슨 글을 쓰겠느냐”는 편견을 깨주었지만, 글 솜씨 하나만으로 픽업된 건 아닙니다. 그녀의 인터뷰엔 늘 흥미진진한 ‘역사’가 있었습니다. 너도 알고 나도 나는 역사가 아니라, 그녀만이 알 수 있고 그녀만이 해석할 수 있는 ‘딴따라들의 역사’입니다.” -고경태|<한겨레21> 편집장 “어쩌면 영원한 또라이” (명계남) 중에서 가슴이 시키는 대로 사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친구가 많은 만큼 적도 많다는 건데 그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그러더니 결정적으로 대선 기간 동안 그는 문화예술계에서 참 많은 욕(?)을 얻어먹었다. 아니, 내가 대신 얻어먹느라 바빴다. 그들은 하나같이 “명계남, 문성근, 너무 설친다”고 했다. 난 솔직히 그 말에 동의할 수 없었고 이해도 가지 않았다. 대선 기간 동안 노무현 씨를 대통령으로 만들기 위해 ‘설친’ 사람들은 어마어마하게 많다. 명계남과 문성근은 그중 하나일 뿐인데, 다만 ‘딴따라’여서 사람들 눈에 더 자주 비쳤을 뿐인 것을…. 그러면서 그들이 설치는 건 다 나중에 정치하려는 속셈이라는 거다. 심지어 “노무현 찍고 싶어도 명계남 설치는 거 보기 싫어서 찍기 싫다”는 사람까지 있었다. 말하자면 명계남이 ‘완전 스타일’이어서 싫다는 거다. 참 답답했다. 그건 그를 잘 모르고 하는 소리다. 아닌 게 아니라 영화에서 그는 ‘고위층’ 역할을 많이 맡았다. 비열한 사장, 냉혈한 보스 같은…. 그런 이미지 때문에 그런 생각을 하는지 몰라도 그에게 정말 어울리는 역은 따로 있다. 연극 <늘근 도둑 이야기>의 어설픈 노인 도둑, <콘트라베이스>에서 짝사랑하는 여자에게 화끈하게 고백 한 번 못해보고 쩔쩔 매는 소심맨 등등이 그에게 ‘적역’이다. 한데 재미있는 현상이 일어났다. 노무현 씨가 차기 대통령으로 당선되자 나는 어이없게도 ‘축하’ 전화를 연거푸 받았다. 물론 나 역시 기쁘긴 한데 ‘축하’라니? 대답이 걸작이었다. “너 명계남 하고 친하잖아.” 참 어이가 없었다. 그랬다. 그동안 그들은 질투를 한 거였다. 명계남이 어떤 제스처를 쓰든 그 사람이 진정으로 민주주의를 위해 악쓰고 다닌다고는 절대 생각하지 않고 그건 정치판에 기웃거려서 떡고물을 얻어먹거나 ‘한 자리’ 차지하려는 것처럼 보였고, 그렇게 될 걸 생각하니 질투가 났었나보다. 난 그들이 명계남이 아니어도 어차피 노무현을 찍을 사람들이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연기밖엔 난 몰라” (윤여정) 중에서 내가 그녀를 처음 본 건 12년 전 스물네 살 때였다. 그녀의 연기에 반해 있던 난 인사를 하게 됐다는 사실에 맘이 콩닥콩닥 뛰었고 날 달리 설명할 길이 없어서 “저 신애라 동기예요”라고 인사를 했다. 그녀의 대답은 날 꼼짝 못하게 만들었다. “그렇게 말하지 마. 그냥 오지혜면 오지혜지, ‘신애라 동기’가 뭐니?” 쪽팔리고 무안하면서도 막연하게나마 무명 신인배우의 자존심을 존중해주는 것 같아서 고마웠다. 그녀에게 말로 사람을 꼼짝 못하게 하는 마력에 가까운 매력이 있다는 사실은 아는 사람은 다 안다. 난 그녀와의 첫 만남에서 이미 그 ‘꼼짝 못함’을 당한 사람이 됐던 거다. 영광이었다. 그녀의 초창기 시절 얘긴 전설처럼 들은 게 많은 데 비해 영화를 보기는커녕 사진 자료조차 본 게 없다는 사실이 부끄러웠다. 인터넷을 뒤져봤다. 인터뷰 안 하기로 유명한 배우답게 정보의 홍수라는 인터넷도 그 정보의 근원지가 입을 다무는 데야 별 수 없었나보다. 겨우 그 유명한 김기영 감독의 <화녀> 스틸 몇 장을 볼 수 있었다. 실례인 말이지만 난 그녀가 첨부터 ‘안 예쁜 여배우’인 줄 알았다(그래서 날 이해해 줄 선배라고 생각했었건만!), 동일인물인가 싶을 정도로 예쁘고 깜찍한 젊은 여배우의 모습이었다. 그녀를 보자마자 그 사진 얘길 했다. 옛날엔 너무 예쁘셨다는 말을 하면서 ‘옛날엔’을 강조하는 실례를 범했다는 사실에 아차 싶었다. 하지만 현명하고 재치 있는 그녀는 “그래, 얘. 성형수술도 안 했는데 이렇게 됐어” 하는 유머로 까마득한 후배의 후진 싸가지를 너그럽게 받아줬다. (중략) 그녀의 가장 화려했던 시절은 장희빈 때가 아닌가 싶다(내 시엄마는 아직도 텔레비전에서 그녀를 볼 때마다 70년대 초의 장희빈 얼굴이 겹쳐진다고 하신다). 누가 장희빈을 했으면 좋겠느냐 시청자에게 물어서 캐스팅된 것임에도 그녀의 실감나는 연기에 넘어간 순진한 어르신들이 그녀를 때려주겠다고 단체로 방송국에 몰려오는 바람에 박근형 씨의 경호를 받아가며 녹화를 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때 모 음료수의 초대 모델로 전국의 담벼락마다 음료수병을 든 그녀의 사진이 붙어 있었는데, 장희빈 이후 포스터마다 그녀의 눈에 구멍을 뚫는 ‘만행’들이 저질러져서 고민을 하던 동아제약 측으로부터 퇴출당한 일화도 있다. 도대체 얼마나 잘했기에…. “박해일스러움을 아십니까” (박해일) 중에서 날 만나러 오는 길에 스크린쿼터 관련 영화인 모임 기자회견에 좀 나와달라는 연락을 받았는데 선약이 있어서 못 간다고 했단다. 그러면서 선약이 없었어도 아마 안 갔을 거라고, 이유는 그런 자리에 나가기엔 아직 ‘공부’가 모자라기 때문이고 그런 자신이 조금 부끄럽다는 거다. 참 솔직하다. ‘공부’야 이제부터 하면 되지, 뭐. 말을 조리 있게 하진 못하지만 “무엇무엇의 정점에서”라거나 “사뭇 무엇무엇하다” 등의 독특한 어법을 보여주는 그의 태도는 시종일관 느릿느릿하고 진지했다. 애늙은이 같다 했더니 그런 소리 많이 들었다면서 아마 어렸을 때 연극판엘 들어와 술자리에서 언제나 막내로 선배들하고만 지내서 그런 것 같다고 한다. 지금도 또래들보단 30대들하고 있는 게 더 편하다나? 그의 10대와 20대 초반은 <와이키키 브라더스>에서처럼 무명밴드의 보컬 겸 기타쟁이였다.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매일 기타 들고 다녀서 부모님 속을 꽤나 썩여 드렸다(우리나라 부모들은 자식이 딴따라가 되는 걸 왜 그리 싫어하는 걸까?). 그러다 수능 전날 수능과 상관없는 한 친구가 새로 산 오토바이를 자랑하기에 잠깐만 몰아본다고 까불다가 엉덩이 뼈와 허벅지 뼈가 박살나는 중상을 입는 사고를 친다. 당연히 재수를 했고 겨우 들어간 대학도 기타 친다고 네 번이나 휴학을 하다 잘렸다. 그 후, 사고 때 상처가 말썽을 일으키는 와중에 신검이 나와서 그는 ‘신의 아들’이 된다. “새옹지마네?” 했더니 그때 생각하면 부모님 뵐 낯이 없다고 한다. 말 안 듣지, 공부 못하지, 사고나 치고 다니지…. 넉넉치 못한 형편에 군대라도 가줘야 할 텐데 하는 일 없이 방구석을 지켰다는 거다. 안 해본 아르바이트가 없었다. 신도시 아파트 건설 현장에서 일당 5만 원짜리 ‘노가다’도 했다. 그러다가 아르바이트의 하나로 아동극 무대에 잠시 섰는데 ‘오호, 이것 봐라’ 코흘리개들 앞인데도 ‘관객’ 앞에 서는 쾌감이 느껴지는 게 아닌가. 기타로 무대 설 생각만 하던 얼치기 딴따라 박해일의 배우 인생은 그렇게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