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을 위한 국가는 없다

저자

박노자 지음

브랜드

한겨레출판

분야

정치,사회

출간일

2012-02-20

ISBN

978-89-8431-551-8

가격

13,000원


구입처

전자책

도서정보

‘촛불집회의 시위대에 한파에도 굴하지 않고 물대포를 쏘는 국가’, ‘생존권을 보장하라는 국민들을 테러리스트로 여기고 살인적 진압을 하는 국가’. 우리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국가는 과연 우리를 보호하고 있는 걸까? 상식에 걸맞지 않는 행동을 하는 국가에 대해 드는 의심을 박노자 특유의 삐딱한 시선으로 풀어놓는다. 늘 평화를 이야기하고 원수를 사랑하라 이야기하는 종교조차 왜 국가의 폭력에, 전쟁에 눈 감는 것일까? 그리고 우리는 왜 은연중에 국가를 위해 자신을 희생해도 좋다고 생각하게 되는 걸까? 동서고금의 다양한 사례와 이에 대한 저자의 분석을 읽다보면 국가-전쟁-종교의 삼각관계와 그 이면에 도사리고 있는 자본주의적 질서에, 국가 권력의 본질에 한 발짝 더 다가서게 된다.

박노자 노르웨이 오슬로 대학교 한국학 교수.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태생으로, 러시아 이름은 ‘블라디미르 티호노프’이다. 상트페테르부르크 대학교 조선학과를 졸업하고 모스크바 대학교에서 고대 가야사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그는, 스승인 미하일 박 교수의 성을 따르고 러시아의 아들이라는 뜻의 ‘노자(露子)’라는 이름을 지어 2001년 한국으로 귀화한다. <당신들의 대한민국>을 통해 한국 사회의 뿌리 깊은 전근대성을 맹렬히 비판하며 주목을 받았다. 이후 한국 사회에 대한 근본적 성찰을 가능하게 하는 날카로운 칼럼들을 지속적으로 써왔으며, 역사학자로서 탈민족주의적 시각으로 한반도의 역사를 새롭게 보는 시도를 계속하고 있다. 주요 저서: <당신들의 대한민국 1,2> <왼쪽으로, 더 왼쪽으로> <좌우는 있어도 위아래는 없다> <거꾸로 보는 고대사> <우리가 몰랐던 동아시아> <하얀 가면의 제국> <우승열패의 신화>
추천의 글 _ 우리를 불편하게 만드는 책 - 김동춘(성공회대학교 사회과학부 교수)
머리말 _ 국가의 실체를 직시한다

1 국가는 무엇인가
‘국살’은 왜 은폐되고 잊혀지는가
국가는 누구의 편인가
‘가난뱅이 타자’ 사냥하는 경찰 잔혹사
백성을 길들이기 위한 극악한 사형제도
국가가 원하는 인간을 만들어내는 학교
전쟁하는 기계, 국가

2 전쟁에 대한 거짓말
전쟁, 합법적 살인과 성폭행의 제전
오래된 거짓말, 계급국가의 정의로운 전쟁
싸우지 않고 이긴다는 병법의 거짓말
국제법 천 마디가 대포 한 문에 진다
자본가에게 전쟁은 ‘축복’
기관총이 열어젖힌 ‘학살의 시대’
자본주의는 끝없이 피 흘린다
한국의 진보는 진정 전쟁에 반대하는가

3 종교, 전쟁, 국가의 삼각관계
기독교는 어떻게 전쟁과 친해졌나
기독교, 전쟁 전도의 역사
‘악의 축’의 탄생, 한국 기독교와 반공주의
불교는 어떻게 국가폭력에 협력해왔나
백인이여, 불교가 그렇게 평화적인가

4 국민은 어떻게 길들여지는가
전쟁영화, 남자와 조국을 노래하다
영웅의 다른 이름, 주검 더미 위의 출세자
살인의 낭만에 도취된 국민들
적을 살해하고 초인으로 거듭나라
“군인들이여, 적은 인간이 아니다”
근대 일본의 치명적 발명품, 무사도
일제의 잔혹한 유산, 자폭 이데올로기
서바이벌 게임과 합숙, 전쟁 같은 자본주의

5 국가폭력에 저항하는 사람들
국기에 대한 경애
여호와의 증인, 병영국가의 ‘동네북’
국가적 살인에 대한 저항의 역사

참고문헌
<당신들의 대한민국> 이후 10년, 박노자가 말하는 ‘국가란 무엇인가’ 국가에 대한 관심이 날로 높아지고 있다. 경제위기, 일자리 문제 등 한 개인이 풀어내기 힘든 문제들이 주위에 산적해 있고, 마침 총선과 대선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이번 기회에 우리나라를 ‘복지국가’로 개조하여 우리 사회가 봉착한 문제들을 ‘국가’를 통해 해결해보자는 여론이 커지고 있다. 이에 부응하여 보수적인 정당들마저 복지를 늘리자고 이야기하는 상황이다. 시민사회에서는 야권연대를 통해 현재의 집권세력을 심판하고, 그들이 더 이상 영향력을 넓히지 못하게 하자는 여론이 지배적이다. 그렇다면 현재의 야권에 권력을 넘겨주고, 그들이 복지국가를 만들어가는 것을 지켜보기만 하면 우리 사회가 가진 문제들이 해결될 것인가? 이 책의 출발점은 바로 이 지점이다. 우리는 기본적으로 ‘우리’ 국가가 국가의 경계를 넘나드는 무국적(또는 미국 국적)의 약탈적 자본과 이들이 ‘자유무역’이라는 이름으로 벌이는 생계파괴로부터 우리를 보호해주길 원한다. 문제는, 노무현 정권이 입안·추진하고 이명박 정권이 비준·발효한 한미FTA의 사례에서 보듯이, 극우냐 자유주의 우파냐의 구별 없이 국정에 참여할 수 있는 모든 주류 정치세력은 하나같이 신자유주의적인 ‘자유무역’의 장려에 ‘국가’의 힘을 모두 쏟아부어왔다는 점이다. 우리는 국가에 ‘시장으로부터의 보호’를 주문하고 싶지만, 국가야말로 시장주의적 민생파괴의 견인차 노릇을 하고 있다. 이 책에서 자세히 논하겠지만, 지배계급의 ‘사무총국’과 같은 국가의 계급적 성격을 보면 이는 불가피하고도 당연한 일일 뿐이다.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국가는 시장, 즉 대자본의 고도의 도구에 불과하다. 이렇게 된 이상, 자본의 도구가 될 집권 정치인들이 어느 정당 출신이냐보다는, 자본의 전횡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한 힘인 민중운동의 발전 상태가 어떤지에 더 큰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저자 머리말 중에서) 국가는 누구의 편인가 국가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기에 앞서 국가의 본질을 살펴보는 것이 먼저일 것이다. 막스 베버는 일찍이 국가란 해당 사회의 유일한 합법적 폭력기구라 했다. 그렇다면 그 폭력이 누구를 향해 어떻게 작동하는지 살펴보는 것으로 국가의 본질에 더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 국가폭력이 국가의 본질과 꼭 연결돼 있지는 않은 ‘공권력의 남용’ 정도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오히려 국가폭력이야말로 국가의 계급적 본질을 여실하게 드러낸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계급 관계라는 게 평소에 잘 보이지 않을 수 있지만, 국가가 폭력 내지 살인을 하는 ‘비정상적인’ 위기 상황에서는 노골적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예컨대 전시 상황에서 대다수가 중산계층 출신인 장교들과 거의 전부가 하층민 출신인 졸병들의 생존율을 비교해보면 하층민이 총알받이가 되고 있다는 사실을 쉽게 알 수 있다. 국가의 경찰력이 기업주의 폭력 등에는 ‘솜방망이 대응’을 하는 경우가 많지만, 급진운동이나 노동운동 등 조금이라도 ‘반체제적’ 냄새가 나는 운동에 대해서는 툭하면 탄압적 태도로 맞선다. 노동자 파업에 초강경 대응하는 남한 경찰은, 의사나 약사 등 중산층의 집단적인 의사표현에는 절대 폭력적으로 대응하지 않는다. 대테러부대를 동원하여 노동자들을 진압하는 모습은 이미 국민의 정부 시절인 2000년 롯데호텔 파업에서 목격한 바 있다. 참여정부 시절에도 강경진압은 이어졌고, 농민대회에서 경찰의 강경진압이 원인이 되어 시위에 참여한 농민이 목숨을 잃은 바도 있다. 현 정부에서 벌어진 용산 참사나 쌍용자동차 노조에 대한 강제진압 등은 이 정부 들어 갑자기 생긴 일이라고 보기 어렵다. 국가의 계급적 본질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다시 한번 진지하게 물어봐야 할 것이다. 전쟁하는 기계, 국가 1장에서 국가의 계급적 본질에 대한 질문을 던진 저자는 2장을 통해서는 전쟁에 대한 이야기를 집중적으로 전개한다. 전쟁은 국가의 폭력성이 가장 분명하게 들어나는 현장이기 때문이다. 2장의 결론을 먼저 얘기하자면, 전쟁은 국가의 가장 중요한 사업이며 ‘정의로운 전쟁’이라는 건 사실상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거짓말’이라는 것이다. 지배층의 치부(致富)와 무기 개발을 중심으로 한 국가 주도의 기술발전 촉진, 그리고 각종 사회·경제적 갈등을 내포하고 있는 착취-피착취 관계의 일시적인 순화라는 효과야말로 전쟁을 지탱해온 가장 강력한 근거들이고, ‘정의로운 전쟁’이라는 개념은 이 전쟁이 지난 수천 년 동안 계속되어 오면서 생겨난 논리일 뿐이라는 것이다. 십자군 운동을 비롯하여 최근 미국의 중동 지역에 대한 침공에서까지 확인할 수 있듯이 늘 선하고 개화된 ‘우리’가 악하고 무지한 ‘적’을 공격하는 게 ‘정의로운’ 전쟁의 명분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명분이라 해도 그 명분으로 약한 나라를 구하는 경우는 없었다. 개화기 조선의 식자층에서 큰 주목을 받은 <만국공법>은 국제법적 질서가 조선의 독립 유지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기대를 불어넣어주었지만 돌아온 것은 일제에의 강제 병합이라는 냉혹한 현실이었다. 국제법적 질서의 무기력함은 최근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모습에서도 재확인된다. 가자 지구에 구호품을 싣고 가던 비정부기구의 구호선이 이스라엘에 의해 나포되고 활동가 9명이 살해당했음에도, 미국은 단지 ‘유감’만 표명했을 뿐이고 유엔은 강경하게 비난하긴 했지만 평소의 무력함을 벗어나진 못했다. 국제법도 결국엔 ‘희망사항’에 그치고 마는 것이다. 그렇다면 종교는 당신의 편인가 이 책의 또 하나 특징은 국가, 전쟁과 함께 종교에 주목한다는 점이다. 3장에서는 불교와 기독교를 중심으로 애당초 평화주의적 요소가 강했던 이들 종교가 어떻게 군사주의와 결탁하게 되었는가를 살피고 있다. 저자의 눈에 의아하게 보이는 것은 군목, 군승 등 군의 사기진작을 담당하고 있는 종교의 모습이다. “칼을 쓰는 자는 칼로 망한다”(마태복음 26:52)는 말씀을 받드는 기독교의 초기 모습을 보면 가히 ‘혁명적’이라고 할 정도의 비타협적 평화주의를 지향한다. 전쟁을 멈출 줄 모르는 강대국 로마에 반전을 선언했다가 순교한 이도 많았다. 입영을 거부해 순교하고, 입영했다가도 참전을 거부하고 제대를 요구한 경우도 비일비재했다. 하지만 지금껏 이런 교리를 받드는 곳은 ‘여호와의 증인’ 등 이단시되는 소수 종파뿐이다. 기독교는 로마의 국교로 공인된 이후 조금씩 무력의 ‘불가피성’을 받아들이면서 결국 ‘정의로운 전쟁’의 논리로까지 나아가게 되었다. 전쟁을 멀리하고 평화를 지향했던 기독교가 어느새 국가가 벌이는 살인의 장(場)인 전쟁을 지원하게 되고, 그 살육의 장에서 흔들리는 개개인에게 힘을 불어넣는 기능을 하게 된 것이다. 야구선수 출신으로 인기 높은 복음 전도자가 된 미국의 빌리 선데이는 “기독교와 애국은 같은 것이고, 비국민과 지옥도 같은 말이다”, “이 전쟁은 천국과 지옥 사이의 성전이다” 등의 말을 즐겨하며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을 독려하기도 했다. 이는 불교라고 크게 다르지 않다. 대표적 사례는 주류 불교와 천황제 국가가 혼연일체를 이룬 1870년대 이후 일본이다. “명예의 전사를 당하게 되면 틀림없이 정토왕생한다”는 내용으로 젊은이들의 참전을 독려하고, 또한 승려들도 나서서 입대하곤 했다. 20세기 중반 이후 불교가 구미권에서 ‘비폭력의 종교’라는 이미지로 급부상하였지만, 이는 제1,2차 세계대전 이후 베트남 침략까지 무수한 학살에 대한 서구 지식인의 죄책감에 맞추어 포교자들이 공들인 바가 크다. 국민은 어떻게 길들여지는가 전쟁을 주요 사업으로 진행하는 국가, 그 국가에 기생하여 영향력 확대에만 골몰하는 기성 종교에 대해 알아본 다음 드는 생각이 있다. “그런데 왜 우리는 이런 것들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 온 것일까?” 4장은 이 부분에 대한 답을 찾는 과정이다. 전쟁놀이, 전쟁영화, 전쟁을 소재로 한 문학작품 등에 우리는 둘러쌓여 있다. 대부분의 전쟁영화를 보면 ‘싸우는 남성들의 공동체’, ‘의리가 강한 남자’ 등이 낭만적으로 그려진다. 또한 전쟁을 소재로 한 많은 작품이 ‘영웅’을 만들어내는데, 이들은 수많은 주검 더미 위에서 살아남아 승리를 거머쥔 자이다. 동아시아 최고 베스트셀러 중 하나인 나관중의 <삼국지연의>는 군웅(群雄)이 천하의 패권을 다투며 벌어지는 야심 찬 귀족들의 패기, 의리, 배반 그리고 죽음과 죽임을 그린 작품이다. 귀족 남성의 ‘영웅성’에 초점이 맞춰진 이 작품에서 감춰진 것은 그 ‘영웅’들이 벌인 전쟁에서 무의미하게 목숨을 잃어가는 병졸들의 삶이다. 알렉상드르 뒤마의 <삼총사>로 대변되는 서양의 모험소설 역시 마찬가지다. ‘귀족의 명예’와 ‘담력’ 등을 키워드로 하는 이 작품에서 결투나 전투에서 상대방을 ‘정당하게’ 죽이는 것은 새로운 명예를 획득하는 쾌거다. 하지만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동물은 동류를 죽이는 데 천부적 거부감을 가졌다. 미국의 군사 연구자 새뮤얼 마셜에 따르면 제2차 세계대전 때 실제로 의식적으로 가시권에 있는 적군 병사를 사살하려 한 미국 군인은 15~20%에 불과했다고 한다. 호전적인 분위기가 전 사회를 휘어잡았을 때인데도 이렇다. 그래서 전쟁을 진행해야 하는 국가는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않는 교육을 끊임없이 해가야 한다. 가상의 적과 ‘우리’를 나누고 그 대상에 대한 증오 교육을 끊임없이 이어간다. 세계대전은 인종주의에 기반한 증오 교육을 그 힘으로 했다. 태평양전쟁 때 미군 병사들은 일본인을 포함한 모든 아시아인을 ‘말할 줄 아는 원숭이’에 불과하게 생각했다. 오늘날 극우 신문들이 펼치는 북한 지도층 악마화 역시 그들을 사람으로 보지 않기 위함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한편, 무사도, 자폭 이데올로기 등 각종 살신(殺身) 미담을 통해 팽창 야욕의 기반을 마련한 일본 제국주의의 방식이 군부독재 시절 우리 사회에도 그대로 이식된 점들도 깊이 되돌아봐야 할 문제다. ‘개인을 버리고 전체를 위해 헌신하라’는 명제는 은연중에 우리 뼛속 깊숙이 자리 잡고 있음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으니까 말이다. 군대의 모습 그대로인 대기업의 신입사원 합숙훈련은 또 어떤가? H재벌의 ‘3박 4일 148km 행군’이나 S재벌의 북한의 매스게임을 연상시키는 ‘일체감 훈련’ 등을 바라볼 때 어떤 생각이 드는가? 우리를 불편하게 만드는 책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김동춘 교수는 이 책을 한 마디로 ‘우리를 불편하게 만드는 책’이라고 소개한다. 국가가 합법적 살인자임을 머리로는 알지만, 몸으로는 인정하지 못하는 ‘진보’를 표방하는 남자들에게 더욱 불편한 책이라고 말한다. (…) 정작 우리를 몹시도 불편하게 만드는 것은 그가 이 책에서 주장하는 내용들이다. 전쟁이 국가의 가장 중요한 사업이며, ‘정의로운 전쟁’이라는 건 사실상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거짓말’이라는 지적은 새로운 것은 아니다. 국가는 지배계급의 ‘사무총국’이며, 외국인뿐만 아니라 내부의 비국민, 즉 가난한 사람들을 조직적이고 대량으로 살해하는 기계라는 그의 주장도 그만의 것은 아니다. 그의 글은 국가에 대한 일말의 기대를 걸고 있는 우리 자신의 이중적 모습을 고발하고 있다. 그는 합리적 조절자로서 국가에 기대를 걸고 있는 ‘우리’ 진보세력에 날카롭게 일침을 가하고 있다. (…) 이러한 주장을 교과서적으로는 알고 있으나 막상 국가라는 힘에 눌려 ‘미워도 다시 한번’을 부르는 진보정치세력에 경고장을 날리고 있다. (…) 불편한 책이 좋은 책이라 했다. 그의 글이 주는 불편함은 (…) 우리에게 너무나 많은 정보와 자극을 주고 있기 때문이고, 우리의 약점을 너무나 잘 지적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김동춘의 ‘추천의 글’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