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사람
강화길
3천만 원 고료 제22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소설집 《괜찮은 사람》, 제8회 젊은작가상 수상 강화길의 첫 장편소설   * “데이트 폭력에서부터 뉴페미니즘의 의미 소환까지 논쟁을 몰고 올 작품” _심사평 중에서   * 누구도 함부로 대할 수 없고, 우습게 볼 수 없는 사람 상처받지 않고 겁먹지 않는 사람 그리고 무엇보다 절대 강간당하지 않는 사람 당신은 ‘다른 사람’입니까?   박민규의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심윤경의 《나의 아름다운 정원》, 윤고은의 《무중력증후군》, 최진영의 《당신 옆을 스쳐간 그 소녀의 이름은》, 장강명의 《표백》, 정아은의 《모던 하트》, 이혁진의 《누운 배》 등 한국문학의 한 축을 담당하며 독자들의 꾸준한 사랑을 받아온 한겨레문학상이 2017년인 올해도 어김없이 스물두 번째 수상작을 냈다. 제22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다른 사람》은 심사에서 “심각한 사회 문제가 되는 데이트 폭력에 대한 날카로운 문제제기와 함께 최근 급부상하는 영페미니스트의 목소리가 구체적으로 담겨 있는 작품이라는 점”과 “처음부터 끝까지 인물과 사건에 대한 집중력 있는 묘사를 유지하면서, 주제를 향해 흔들림 없이 과감하게 직구를 던진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으며 263 대 1이라는 경쟁을 뚫고 당선됐다. 수상자 강화길은 2012년 등단한 이래 여성문제에 대한 작품을 꾸준히 발표하며 주목받고 있는 작가이며, 2016년 말 소설집《괜찮은 사람》을 냈고, 단편 〈호수-다른 사람〉으로 2017년 제8회 문학동네 젊은작가상을 수상했다. 작가는 첫 장편이기도 한 《다른 사람》에서도 최근 우리 사회의 갈등으로 떠오르고 있는 ‘데이트 폭력’, ‘여혐’, ‘성폭력 문제’를 집중적으로 진정성 있게 다루고 있다.   ‘다른 사람’은 우리 주변에 만연해 있는 남녀 또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폭력(정신적인 부분 포함)을 ‘나는 그 사람들과 다르다’며 외면하는 공감의 단절을 의미한다. 《82년생 김지영》 이후 우리가 지켜보아야 할 완전히 새로운 페미니즘 소설이며, 어쩌면 이삼십 대 세대의 첫 페미니즘 소설이라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소설에 등장하는 여성인물 대부분은 그 수위가 다를 뿐 성에 관한 다양한 폭력의 경험을 가지고 있다. 주제를 부각시키기 위한 장치냐는 물음에 작가는 단호하게 이야기한다. 문학을 위한 설정이 아닌, 우리가 외면해온 주변의 흔한 상황일 뿐이라고. 소설은 ‘유리’라는 인물을 통해 우리에게 어떤 기억을 불러일으킨다. 그 기억은 여성으로서 겪어야 했던 부조리와 공포, 불안이자 여성끼리 주고받아야만 했던 외면과 상처이다. 늘 그렇듯이 여성으로서의 생존 서사에서 누구는 이겨내고, 누구는 좌절하며, 누구는 죽고 만다. 소설의 끝에서 작가가 호명하는 ‘너’라는 단어는 우리가 잊었다고 믿고, 잊기 위해 애썼지만 여전히 무섭고 두려운 어떤 기억이자 진실 앞에 우리를 서게 한다.   이렇듯 무거운 주제의식에도 불구하고 소설은 의외로 담담하게 진행되는데 이는 작가의 문체와 관련이 있다. 심사를 맡았던 정여울 작가는 이를 두고 “나는 강화길의 직접적이고 원시적인 문체가 좋다. 이리저리 세련되게 돌려 말하지 않고, ‘전 이게 정말 싫어요’라고 외칠 줄 아는 담력과 뚝심이 좋다”고 평하기도 했다. 황현산 문학평론가 역시 “진정으로 심각한 이야기를 하려는 사람은 글에서 힘을 빼야 한다”며, “소설《다른 사람》은 바로 그 점을 증명한다”고 평했다.   “페미니즘의 최신형 무기” 이야기를 끝낼 사람은 바로 ‘너’다   주인공 진아는 같은 회사 상사이기도 한 남자친구로부터 몇 차례 폭행을 당한다. 견디다 못해 고소를 했고, 재판 끝에 가해자는 겨우 벌금 300만 원을 선고받는다. 이후에도 협박이 계속되자 진아는 그 이야기를 인터넷 게시판에 올려 공론화했고, 처음에는 사람들이 진아 편을 들어주는 듯했다. 그러나 직장 동료인 김미영이 진아가 남자친구를 이용한 거라며 사내게시판에서 오간 말들을 올리자 여론은 순식간에 반전돼 어느새 진아는 “맞아도 싼 년”이 되어버렸다. 진아는 이후 몇 개월 동안 방에 틀어박혀 매일 인터넷에 자신의 이름을 검색한다. 왜 사람들이 자신을 미워하는지, 자신이 왜 한심한 여자인지 알기 위해서. 어느 날, 진아는 평소처럼 댓글들을 살펴보다 “김진아는 거짓말쟁이다. 진공청소기 같은 년.”이라는 글을 발견한다. 글을 쓴 아이디는 @qw1234. 이로부터 모든 이야기가 시작된다. ‘거짓말쟁이’, ‘진공청소기’ 이 단어들은 진아를 알지 못하면 떠올릴 수 없는 말들이다. 그리고 이 말은 잊고 지냈던 12년 전으로 진아를 소환한다. 죽은 친구 유리에 대한 기억과 함께.   진아가 트위터에 글을 올린 당사자를 찾아 고향 안진으로 내려가면서 이야기는 새로운 국면을 맞는다. 진아는 안진에 있는 대학교에서 1, 2학년을 보냈다. 12년 전 그곳에는 이 소설의 또 다른 주인공들인 수진, 유리, 동희, 현규가 있다. 진아와 어린 시절을 함께해 서로의 밑바닥까지 알고 있는 수진, 모든 남자에게 쉽게 마음을 열어 ‘진공청소기’라는 별명을 가진 유리, 안진 유지의 아들로 모든 걸 갖춘 현규, 성공에 대한 욕망으로 권력 앞에 조아릴 줄 아는 동희. 소설은 이들 네 명 사이에 일어났던 일들이 각자의 입장에서 서술되며 씨줄 날줄로 엮여나간다. 각 장마다 달라지는 화자를 쫓아가며 퍼즐 맞추듯 사건의 중심으로 다가가게 된다. 진아는 친구가 되고 싶다는 유리를 애써 모른 척하고 도와달라는 마지막 요청까지 외면한다. 그리고 ‘다른 사람’이 되기 위해 안진을 떠난다. 그로부터 며칠 후 유리가 교통사고로 사망했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안진에 내려가 글을 올린 당사자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진아는 뜻밖에 유리와 수진, 그리고 자신에 얽힌 진실과 마주한다. 그리고, 자신을 비롯해 주위의 모두가 유리의 죽음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음을 알게 된다. 이렇게 진아는 버리고 싶었던 과거를 되새기는 동안 현재를 해결할 실마리를 찾는다. 누구도 함부로 대할 수 없는 사람, 상처받지 않고 겁먹지 않는 사람, 그야말로 ‘다른 사람’이 되기 위해 홀로 몸부림치는 것으로는 결코 문제가 해결될 수 없음을, 도와달라는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손 내밀 때 마침내 이야기가 끝날 수 있음을 진아는 뒤늦게 깨닫는다. 평론가 정홍수는 이 소설이 불안하고 불온하여 놓아버리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 이유가 이야기를 끝내야 할 사람은 ‘너’라는 불편한 호명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 개시와 호명의 힘이 강렬한데, 분노 못지않게 지적인 통제가 섬세하게 작동한 결과라는 이유와 함께. 제22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목화밭 엽기전
백민석
  한국문학 최고의 사이코 서스펜스 소설! ‘호러’, ‘미스터리’, ‘스릴러’로 직조한 백민석의 기념비적인 대표작! ‘작가들의 작가’, ‘한국문학의 압도적 하드코어’ 소설가 백민석의 기념비적인 대표작 《목화밭 엽기전》이 재출간되었다. 첫 출간 당시 엽기적이고 극단적이었던 이야기는 세월이 흐르며 사실적이고 (여전히 전위적이지만) 가독성 있는 이야기로 바뀌었다. 《목화밭 엽기전》은 어린 남자아이를 납치해 스너프 필름을 찍은 뒤 죽여 집 뒤 공터에 파묻는 한 교사 부부의 이야기다. 빈틈없이 끔찍하고, 빈틈없이 역겨운, 서울의 삶에선 단 한 번도 맡아보지 못했을, 한 번도 맡아보지 못했으면서도, 무엇인지 단박에 알아차리고 엉엉 무서워 울게 될, 그런 지독한 냄새를 풍기는 공포소설이다. 백민석은 《목화밭 엽기전》에서 한창림과 박태자를 통해 평온한 일상 밑, 평범한 인간 내면에 숨어 있는 ‘괴물’을 끄집어내 보여준다. 과도한 에로티시즘과 폭력성은 경멸과 증오의 대상임이 틀림없지만 현대 도시의 밑바닥과 현대인의 내면에 분명히 존재하는 것들임을 상기시킨다.   “누군가의 평생을 망쳐버린다는 건 아무래도 흥분되는 일이다.” 당신이 절대 마주해서는 안 되는 진짜 악(惡), 한 살인자 부부의 이야기 환율은 치솟고, 주가는 폭락하고, 금리는 최고치를 경신하던, 때는 IMF로 국가부도사태의 전망이 온 나라를 휘감던 1997년. 제15대 대통령 선거를 한두 달 앞둔 어느 날, 정부 과천청사와 서울대공원 사이의 그린벨트로 묶인 한적한 전원주택 뒷마당에서 한 사내가 삽으로 흙을 파내고 있다. 팔 자리를 잘못 고른 사내, 대학 강사 한창림은 욕설을 내뱉고 똥을 지리면서도 끝내 구덩이를 메우고 잔디 뗏장을 입힌다. 그런데 그가 묻고 있는 건 음식물 쓰레기나 동물의 변이 아니다. 흰 모포로 말아놓은 ‘거름’의 정체는 스너프 필름(Snuff film, 사람이 실제 죽는 장면이나 자살하는 장면 등을 담은 영상)을 찍고 죽은 아이의 사체다. 한창림은 편집이 끝난 스너프 필름을 챙겨 들고 차를 타고 정부 과천청사 맞은편 빌딩으로 간다. 한창림은 빌딩 4층과 5층 사이 안전 문 앞에서 인터폰을 들고 자신이 온 것을 알린다. 그리고 계단을 다 올라가면 비로소 ‘펫숍’이다. 거친 표면의 암회색 시멘트 기둥들과, 층 전체를 빙 둘러가며 난 창문들을 빼면 아무것도 없는 펫숍의 5층. 한창림도 6층엔 가본 적이 없다. 작달막하고 바싹 마른 펫숍 삼촌 앞에서 바닥에 기다란 핏자국을 남기며 죽은 사내가 끌려나간다. 펫숍 삼촌에게 스너프 필름을 넘긴 한창림은 수표 다발이 든 종이봉투를 들고 서둘러 빌딩을 빠져나온다. 그리고 차에 올라타 도어를 걸어 잠그곤 소리 죽여 운다. 펫숍 삼촌이 무서워서다. 울음을 그친 한창림의 눈에 길거리에서 양담배를 피우는 한 중년 남자가 들어온다. 그는 중년 남자의 꼬나문 담배를 향해 손바닥을 날린다. 그제야 그는 다시 좋은 기분이 든다. 강력한 수컷 냄새를 풍기는 그로 돌아간다. 그러나 며칠 뒤 한창림은 한 남자의 전화를 받게 된다. 그는 자신이 과천 경찰서의 오장근 형사라고 말한다. 한창림은 그제야 비로소 무언가 일이 꼬이기 시작했다는 걸 깨닫는다. 한창림에게는 그의 분신 같은 아내, 조울증에 걸린 수학 과외 교사 박태자가 있다. 부부는 벌써 여러 번 어린 남자아이를 납치해 집의 부엌 아래 있는 지하 작업실에 감금한 뒤 스너프 필름을 찍어왔다. 이번에 납치한 아이는 박태자가 예전에 가르쳤던 남자아이다. 남자아이를 납치해 지하 작업실에 가두고 며칠 뒤 박태자에게도 한 통의 전화가 걸려온다. 단골 가게인 ‘뷰티풀 피플’ 사장의 전화다. 뷰티풀 피플 사장은 박태자에게 조울증 약을 파는 브로커이기도 하다. 한창림이 펫숍의 호색한을 ‘삼촌’이라 부르는 것처럼, 박태자는 뷰티풀 피플 사장 여자를 ‘언니’라고 부른다. 하지만, 수화기 건너편에서 들려온 목소리는 뷰티풀 피플 언니가 아닌 흥분한 남자의 목소리다. 박태자는 곧 그가 언니의 남편이란 걸 깨닫는다. 남편 한창림처럼 몸에서 수컷 냄새라는 나쁜 냄새를 풍기는 남자. 박태자는 지하 작업실에서 남자아이를 훈육하던 한창림을 부른 뒤 서둘러 정부 과천청사 쪽 도로변에 있는 뷰티풀 피플로 간다. 뷰티풀 피플에는 거꾸로 매단 언니의 몸에 가격표를 붙인 채 거구의 남자가 그들을 기다리고 있다. 조울증에 걸린 수학 과외 교사 박태자와, 하는 일이라곤 집 뒤 잔디밭에 죽은 아이로 거름을 주는 게 전부인 한창림, 이 둘의 아슬아슬한 안식처인 이 집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누군가 다른 이의 손에 의해서 끝이 날까? 구역 나는 악취투성이 이 집의 운명을 마무리해주는 것은, 펫숍 삼촌일까? 뷰티풀 피플 언니일까? 언니의 거구 남편일까? 지하 작업실에 묶여 있는 어린 남자아이일까? 아니면 과천 경찰서의 오장근 형사일까? 그것도 아니면 누군가 뜻밖의 인물일까?   당신이 있는 서울의 삶에선 단 한 번도 맡아보지 못했을, 한 번도 맡아보지 못했으면서도, 무엇인지 단박에 알아차리고 엉엉 무서워 울게 될, 그런 지독한 냄새를 풍기는 공포소설 소설의 주인공인 한창림과 박태자가 보여주는 세계가 폭력과 섹스의 절대적 모습이냐고 묻는다면 답하기 어렵다. 우리가 《목화밭 엽기전》에서 볼 수 있는 건 백민석이 그저 진지하게 한 세계를 바라보고 있다는 점이다. 그게 폭력이건 섹스건 광기건 괴물이건 무어건. 그리고 그 진지함이야말로 이 소설을 ‘한국문학 최고의 사이코 서스펜스 소설’로 말할 수 있게 만든다. 한창림과 박태자는 대학 강사와 수학 과외 교사라는 멀쩡한 겉모습의 삶을 살고 있다. 그들에겐 부모나 형제도 있고, 집도 있고, 직업도 있다. 그들이 살고 있는 과천시(市)는 전국에서 범죄율이 가장 낮은 곳이다. 여느 평범한 집처럼 그들의 식탁엔 된장찌개가 오르고, 그들의 손엔 리모컨이 쥐어져 있다. 하지만 그들은 우리와 다르다. 어떤 계기가 주어지면 잘 포장해두었던 껍데기가 벗겨지고, 괴물로서의 속살과 삶을 드러낸다. 아니, 어쩌면 그래서 우리와 더 같은지도 모른다.   “둘 다 처음부터 이 세상에 있으면 안 될 사람들이었고 필연적으로 불행해질 사람들이었다. 그도 아내도 이 사회에서, 날 때부터 괴물로 운명 지어진 존재들이었다.” _287쪽   소설은 한창림과 박태자가 날 때부터 괴물이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정말일까? 한창림과 박태자는 날 때부터 괴물이었던 걸까? 암컷 맨드릴을 잡아먹은 수컷 맨드릴을 두고 한창림이 동물원 사육사와 나누는 이야기에서 우리는 무언가 진실이 비틀려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그게 야생의 모습이겠죠?” “아니지— 아저씨 영화 만드는 사람 맞아요? 몰라서 그래요? 포유류는 야생도 미친 거만 아니면, 같은 과 동물의 고기는 잡아먹지 않아요.” _192쪽   같은 과 동물의 고기는 잡아먹지 않는다는 말은, 같은 인간을 죽이고 해하지 않는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그리고 저 말은 그렇다면 왜 한창림과 박태자는 어린 남자아이들을 납치하고 가두고 죽이는가, 라는 질문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수컷 맨드릴이 암컷 맨드릴을 죽인 이유가 혹시 동물원에 갇혀 있었기 때문은 아닐까, 하고 의심하게 된다. 어쩌면 문제는 사회 체계 바깥의 존재가 아니라, 사회 체계 바깥의 존재가 사회 체계 안에서 살게 되었을 때가 문제일는지도 모른다고. 아니, 그 사회 체계가 무언가 고장이 나버렸거나, 사회 체계 자체가 괴물 양산소가 되어버렸는지도 모른다고.   “난 아파트에서 태어나서 아파트에서 살다 아파트에서 죽을 놈이에요. 저렇게 휑 비워놓은 곳을 보면 젠장, 가슴이 답답해져요.” _103쪽   한창림이 보는 세계는 아파트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에게는 이해될 수 없는 세계다. 서울랜드에 와서 즐거운 비명을 지르는 사람들에게는, 서울랜드 근처에서 들리는 처절한 비명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그 세계는 그들에겐 도저히 보이지 않는 세계다. 시체들이 묻혀 있는 곳을, 하얗고 순수한 목화밭으로 뒤덮어버리자고 말하는 오장근이라는 경찰 공무원의 말은 그래서 더 아이러니하다. 공교롭게도 한창림은 목화밭을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한창림의 삶에선 목화밭처럼 평온하고 행복하고 순수한 어떤 이미지도 존재한 적이 없다. 그렇기에 도시인의 삶이라면, 그게 사회 체계 안의 인식이라면 목화밭으로 채웠을 저 땅을, 한창림과 박태자는 시체들의 무덤으로 채워야 했던 건 아닐까.   “하. 그래서 그 쫓겨난 나쁜 냄새들이란 것들이 숨어버렸답니다. 똘똘 뭉쳐서, 증류하고 난 다음 비커 밑바닥에 고인, 무슨 끈적끈적한 진액처럼.” 그는 그 쫓겨난 나쁜 냄새들의 엑기스, 진액들이 언젠간 이 과천의 위생 처리된 맨홀 뚜껑 바깥으로 넘쳐날 순간이 올 거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_183쪽   그래서 나쁜 냄새란 나쁜 냄새는 모두 모이도록 만들어버렸는지도 모른다. 《목화밭 엽기전》이 출간된 이후에 우리의 실제 삶에서 수많은 나쁜 냄새를 목격하게 된 건 무섭고도 의미심장한 일이다. 소설이 끝난 뒤에도 ‘펫숍’은 여전히 수수께끼로 남는다. 정부 과천청사 앞에 그런 빌딩이 있고, 그 속에서 ‘펫숍 삼촌’이 벌이는 의뭉스럽고도 끔찍한 일들은 도저히 사실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그걸 받아들이지 못하는 건 한창림이나 박태자나 우리나 모두 마찬가지다. 사실 우린 차에 치여 죽은 길고양이의 사체가 어떻게 버려지는지도 정확히 알지 못한다. 우리가 알려고 하고 보려고 하는 건 모두 거기 제자리에 있는 거 같지만 다가가면 보이지 않는 세계다. 《목화밭 엽기전》의 세계가 너무나 참혹하고, 너무나 진지하며, 너무나 구체적인 것과는 다르게 우리가 보게 되는 건 온통 모자이크로 둘러싸인 세계다. 한창림과 박태자는 말하고 있는 게 아닐까? 세상 곳곳에 펼쳐진 목화밭 밑을 파보라고. 거기에 무엇이 있는지 똑똑히 보라고.



교양과 광기의 일기
백민석
‘작가들의 작가’, ‘우리 시대 압도적 하드코어’ 소설가 백민석의 신작 장편소설! ‘작가들의 작가’, ‘우리 시대 압도적 하드코어’ 소설가 백민석의 신작 장편 《교양과 광기의 일기》가 출간되었다. 제목부터 독특한 이 소설은 40대 소설가인 ‘나’가 쓰는 ‘교양’의 일기와 광기 어린 한 10대 소년이 쓰는 ‘광기’의 일기가 일기장 앞뒷면에 번갈아 쓰인다는 구성의 환상적이면서도 실험적인 소설이다. 소설은 87일간의, 180개의 일기로 되어 있다. ‘어느 날, 나의 일기 뒷면에서 아무도 모르게 광기에 찬 한 소년의 일기가 시작된다’라는 다소 비현실적인 이야기를 통해 작가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내면의 이중성을 파고든다. 이성적이고 합리적이고 계산적인 ‘교양성’과 무법적이고 비현실적이고 충동적인 ‘이중성’ 중 늘 어느 한쪽만을 중심에 놓고 세상을 보려는 사람들에게 비록 중심에선 밀려났지만 여전히 존재하는 보이지 않는 세계가 있다는 걸 소설로서 증명하려 한다. 작가가 직접 찍은 소설 안의 쿠바 사진과 중심에 대한 여러 사상가의 말은 소설을 읽는 재미를 더해준다.   앞면에 일기를 쓰는 40대 중년 소설가 ‘나’와 뒷면에 일기를 쓰는 광기 어린 한 10대 ‘소년’의 이야기 소설가 백민석이 오랜 절필을 끝내고 돌아온 지 어느덧 4년이 지났다. “그의 절필로 한국문학은 어떤 ‘전조’를 십 년간 잃었다”는 평론가 황현경의 말처럼, 백민석은 그 전조를 직접 찾으려는 듯 그사이 정말 쉬지 않고 썼다. 소설로는《혀끝의 남자》, 《공포의 세기》, 《수림》을 새로 써서 냈고, 《장원의 심부름꾼 소년》과 《죽은 올빼미 농장》, 《목화밭 엽기전》을 다시 펴냈고, 그사이 미술 에세이 《리플릿》과 여행 에세이 《아바나의 시민들》을 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절필을 했는지’, ‘왜 돌아왔는지’라는 물음은 아직도 책을 낼 때마다 꼬리표처럼 따라붙는다. 백민석 작가의 신작 장편 《교양과 광기의 일기》의 한 문장을 통해 우리는 그 물음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다.   누군가를 더 사랑하고 싶다면 그/그녀에 대한 글을 써라. 어떤 도시를 더 사랑하고 싶다면 그 도시에 대한 글을 써라. 이것이 아침에 일어나 베란다 창밖을 내다보며 문득 든 생각이다. 이 나라, 이 도시에 대해 사나흘 고심해 글을 쓴 일이, 지난 한 달 관광객으로 도시를 돌아다니며 생긴 애정보다 더 많은 애정을 갖게 했다. 글은 사랑이라는 감정에 이해를 더해, 사랑을 더 깊게 한다. 글은 애정에 애정의 이유를 더해, 애정을 더 깊게 한다. 나도 내가 사랑에 대해 쓰게 될 줄은 몰랐다. _87쪽   ‘나도 내가 사랑에 대해 쓰게 될 줄은 몰랐다’라고 하지만 백민석이 써온 소설들은 모두 누군가를 더 사랑하고 싶어서 쓰였다. 절필한 것도, 돌아온 것도, 계속 소설을 쓰는 것도 역시 그렇다. 절필 전 그의 거의 모든 작품에 자기 고백적 성격이 짙었던 것도 어쩌면 그래서일 것이다. 백민석은 여전히 자신과 세상과 그가 사랑하는 것에 이해와 사랑과 애정을 더해 글을 쓰는 작가다. 자기가 살고 있는 세계를 진지하게 바라보며, 자신의 양심에 어긋나지 않게 자신이 본 걸 정직하게 자신만의 방식으로 쓰는 작가. 그 점에서 《교양과 광기의 일기》는 그의 새로운 대표작임이 틀림없다. ‘교양’과 ‘광기’와 ‘사랑’의 일기임이 틀림없다.   겹쳐지고 충돌하고 이어지는 두 개의 일기, 그리고 두 개의 이야기 《교양과 광기의 일기》는 얼핏 보면 난해하고 실험적인 작품으로 보인다. 번갈아 쓰이는 일기라는 형식은 이 소설을 어떻게 읽어야 할지부터 난감하게 만든다. 하지만, 소설은 작가가 직접 체험한 쿠바 여행기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작가를 연상시키는 40대 남자 소설가인 ‘나’는 일본을 거쳐 쿠바로 여행을 떠난다. 여행은 순조로워 보인다. 하지만 일본에서의 첫날, ‘나’의 안에서 한 ‘소년’이 깨어난다. 전쟁놀이와 광란의 섹스를 좋아하는 10대 ‘소년’은 아무도 모르게 ‘나’의 일기장 뒷면에 또 하나의 일기를 쓰기 시작한다. 남자의 일기가 ‘교양’의 일기라면 소년의 일기는 ‘광기’의 일기다. 그날부터 둘은 같은 여행을 하며 각기 다른 것들을 보고 상반된 두 개의 일기를 써나간다. 도쿄에서 ‘나’가 도쿄의 지하철에 몰두할 때, ‘소년’은 일본의 사무라이와 칼에 심취한다. 쿠바에서도 마찬가지다. 쿠바 아바나에 도착한 ‘나’가 숙소를 중심으로 원형을 그리며 산책을 하면서 쿠반 샌드위치를 사 먹고, 돈을 환전하고, 쿠바 일정을 도와줄 코디네이터 리자를 만나는 동안, ‘소년’의 세계에선 ‘햄’과 ‘게바라’와 ‘루벤’이 도미노 게임을 하는 장면이 펼쳐진다. 쿠바에서의 ‘나’의 일상은 한국에서와 별반 다르지 않다. 계속 글을 쓸 수 있게 한국에서와 똑같은 환경으로 작은 방의 책상을 꾸미는 게 고작이다. 제일 골칫거리라고 하면 인터넷 정도일까. 그동안 ‘소년’은 숙소 맞은편 레스토랑에서 재즈 뮤지션들의 노래를 듣는다. ‘나’가 점점 더 큰 원을 그리며 아바나를 산책하고, 미국 대사관과 여러 사상가가 말한 중심에 대해 생각하는 동안, ‘소년’은 말레콘의 보이지 않는 낚시꾼들의 세계와 조우한다. ‘나’가 아바나 관광 지도를 보며 카피톨리오를 가운데 놓고 산책하고, 아바나 비에하의 ‘카사’라는 주택 형태를 보고 감탄하는 동안, ‘소년’은 허벅다리 안쪽에 ‘명산(名山)’이란 문신을 한 물라토 여자 ‘다나이스’를 만난다. 그리고 이 ‘다나이스’와 몸을 파는 ‘룰리의 숙녀들’의 세계로 들어간다. 한편, ‘나’의 일기장에선 단 한 번도 ‘다나이스’가 등장하지 않는다. ‘교양’의 일기에선 말레콘의 보이지 않는 낚시꾼은 등장할 수 없다. ‘나’의 세계에서 일어나는 큰일이라는 건 인터넷을 하기 위해 나우타 카드를 구매해 와이파이존에 가거나, 비에 젖은 카메라를 앞에 두고 절망에 빠지거나, 새 카메라를 사기 위해 아바나를 정처 없이 헤매거나, 호세 마르티 문화원 측으로부터 강연 원고를 퇴짜 맞는 것 정도다. 반면, ‘소년’의 세계는 다르다. ‘소년’은 ‘룰리의 숙녀들’의 백인 마스터를 폭행하고, ‘다나이스’의 아버지를 찾기 위해 애쓰며, ‘나’와 같이 아바나를 떠나지 않으려고, ‘나’의 몸에서 벗어나기 위해 어떻게든 저항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두 세계는 점점 좁혀지고, 겹쳐지고, 충돌한다. ‘소년’이 폭행했던 ‘룰리의 숙녀들’의 백인 마스터는 결국 “지난 10월부터 나타났고, 물 빠진 카고 반바지에 얼굴이 시커멓게 탄” 치노인 ‘나’를 알아본다. 호텔 내셔널의 연말 갈라쇼를 보던 ‘나’의 눈에도 ‘다나이스’가 보인다. ‘나’의 쿠바에서의 일정이 끝나가면서 이야기도 점점 끝으로 치닫는다. ‘소년’은 ‘나’에게서 벗어날 수 있을까? ‘나’는 ‘소년’의 광기의 세계와 마주하고도 무사할까? ‘다나이스’는 아버지를 찾게 될까? ‘나’와 ‘다나이스’의 사랑은 이루어질 수 있을까?   표지만 본 독자들은 영영 모를 것이다 이 소설이 얼마나 재미있는지   중심에 대해서는 이미 여러 사상가들이 말해왔다. 이 소설은 그 말들에, 내 말을 덧붙이는 식으로 쓰였다. 중심은 세상에 질서를 가져와 세상을 더 살 만하게 만들었을지 몰라도, 중심에서 밀려난 많은 인간들을 비참하게 만들었다. _작가의 말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 걸까. ‘나’는 뭐고 ‘소년’은 뭐고 ‘다나이스’는 뭐고 ‘백인 마스터’는 뭐고 ‘다나이스의 러시아인 아버지’는 뭐고 ‘보이지 않는 낚시꾼들’은 도대체 뭘 말하는 걸까? 왜 일기는 꼭 앞뒷면에 쓰여야 했을까? 중심에 서 있을 때 우리는 이런 질문들을 할 수 있다. 우리는 오래도록 이야기의 중심에 서 있었고, 자라면서 늘 그 중심에 대해서 들어왔다. 발단, 전개, 절정, 위기, 결말이라는 이야기의 형식과 중심 소재와 줄거리와 주제라는 이야기의 중심과 여러 시제와 인칭과 비유법들에 대해서. 중심이 있는 이야기는 소설의 세계에 질서를 가져와 소설을 더 살 만하게 만들었을지는 몰라도, 소설의 중심에서 벗어난 많은 소설을 비참하게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이 소설은 “소설 읽을 시간도 없다”는 소리들 틈에서 생겨난 건지도 모르고, “얼토당토않은 내용”을 중심에 맞게 써서 책으로 내려는 소설들 틈에서 생겨난 건지도 모른다. 이 소설이 얼마나 재미있는지, 우리가 왜 여전히 백민석의 소설을 읽어야 하는지, 《교양과 광기의 일기》의 표지만 본 독자들은 영영 모를 것이다.